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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노라고 하고 전화를 끊기는 했다만 아무래도 마음이 무겁다.
음
일주일 전 쯤 소개팅을 했다. 선배가 혹시 소개팅 해볼 생각 있냐고 묻길래, 그런거 저 잘 못한다 라고 말했
는데도 한번 만나보라고 해서 나갔다. 솔직한 마음으로야 당연히 싫진 않지만 잘할 자신이 없어서 그랬다.
여자는 나보다 두 살 어린, 회사에 다니는 여자 분이었다. 예뻤다. 어… 그렇다고 무슨 막 엄청 예쁜 그런
대단한 연예인급 여자, 이런건 아니지만, 그냥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여자 분, 이긴 했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그런 여자 분도 다 이뻐 보이기 때문에, 아니 어, 이건 좀 실례되는 발언 같은데 그런 뜻에서 하는
말은 아니고, 음 진짜 우리나라 여자들 되게 다들 이쁘지 않나? 여튼 그 분도 예뻤다.
하아. 내가 이렇다. 말 주변머리가 이렇게 없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들 말씀 조리있게 잘하시고 멋진데 왜
나는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아 맞다. 하여튼, 소개팅은 그래도 나름 잘 된 거 같다. 나야 그저 그 분이랑 같이 대화도 하면서 맛있는 것도
또 먹고 해서 당연히 디게 좋았지만 그 분은 내가 말 주변머리도 없고 별 재미도 없었을텐데 그래도 잘 들어
주었다. 이야기 하면서 중간에 내가 생각해도 횡설수설한 이야기조차 잘 정리해서 들어주고 그런게 참 좋았다.
이해심도 많은 거 같다. 세 자매 중에 맏언니라서 그런 거 같다. 그러고보면 사실 애프터 신청도 그녀가 먼저
했다. 사실 주선자인 선배한테 "설령 마음에 안 들더라도 끝나고 다음에 또 한번 더 보자고 하는게 예의야"
라고 소개팅의 룰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깜박하고는 그냥 맛있는거나 먹고 헤어질 뻔 했는데
"저 마음에 안 드세요? 애프터 신청 안 해주세요?"
하고 먼저 그렇게 웃으면서 물어봐주었다. 화들짝 놀라서 손발을 다 내저으며-아 부끄럽다- 깜박했다고,
사실 주선자 선배한테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제가 사실은 소개팅이 정말로 태어나서 두 번째라고 고백하면서
그래서 잘 몰라서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하면서 그렇게 '애프터 신청'을 했다. 그 다음 주는 프로젝트 관련해서
준비할게 많아 엄청 바쁠 거 같아 2주 후에 보기로 했다.
보통 여자였다면 거기서 난 퇴짜 아니었을까. 자존심 문제라면서. 그거 생각하면 그 분은 정말 적극적이고
멋진 여자 분 같다. 나같은 놈은 그런 분이 어울리는 거 같기도 했다. 아니아니, 내가 잘나서 어울린다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내가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이끌어 줄 수도 있는… 아닌가? 아니다. 어느 여자가 그런 걸 좋아
할까. 음. 남자가 막 적극적이고 듬직하고 그래야 역시 여자들은 좋아하겠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다음 주는 역시나 엄청 바쁜 주간이라 연락을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3일을 그냥 흘려보냈다. 그게
막 연락을 하고, 또 목소리도 듣고 싶고 뭐 그렇기는 한데 일단 낮에는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흘려보냈고
저녁에는 왠지 그 분이 바쁠 거 같기도 하고 실례는 아닐까 걱정도 되고…
으음
아니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전화해서 할 말이 없을까 봐. 되게 어색하고 그 힘든, 그 알잖는가. 예전에 소개팅
한 여자 분도 사실 그게 어려웠다. 딱히 할 말도 없고 뭔 말을 해야할지 잘 몰라서…
음, 여튼 그래서 여자 분이 주선자인 선배한테 물어봤나보다. 혹시 내가 마음에 안 들어하는 눈치냐고. 아닌데.
나는 선배한테 엄청 마음에 든다고 말했는데. 그랬더니 선배가 방금 전에 그렇게 전화를 준거다.
니가 먼저 연락도 좀 하고, 남자가 적극적으로 대시를 해야하는거 아니냐고.
후우. 그렇지. 그렇겠지. 음. 미리 메모지에다가 할 말을 그래서 지금 적는 중이다. 날씨 이야기, 요즘 야구 이야
기. 그 여자 분이 야구 좋아한다고 했으니까. 사실 난 야구 잘 안 보지만. 아까 그래서 한 시간 동안 야구뉴스 좀
들여다봤다. 생전 처음 보는 이름들이 가득해서 조금 놀랬다. 내가 이 정도로 야구에 대해 문외한이었나? 아아!
다시 집중집중.
일단 그리고, 음, 어, 야구 이야기 좀 하면서 다음 주에 야구장에서 보는거 어떠냐, 이렇게도 제안해보고, 음,
그리고 또… 아니면 영화. 그렇지. 영화도… 그리고 또 뭔 이야기를 할게 있나 한참을 고민하다 집에 오는 길에
있는 꽂집 생각내서 꽃 좋아하시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아 또 너무 뻔한 질문 같기도 해서 꽃, 이라고 쓴 글자
위에다가 X표를 친다.
음.
또 무슨 이야기를 하지. 우리 연구실 이야기는 뭐 말할 꺼리도 없는데. 그 여자분 회사 이야기 같은거는, 음
회사 이야기 같은거는 싫어하지 않을까. 쉬는 시간에 그런 이야기는. 아아. 도대체 연애 잘하는 사람들은 무슨
이야길 하는 걸까.
시계를 보니까 고민하는 사이 벌써 15분이 흘렀다. 연구실에서는 그래도 나름 아이디어의 귀재 소리 듣는데
이런 이야기는 왜 생각이 하나도 안 떠오를까. 시계는 벌써 7시 45분이다. 너무 늦은 시간에 전화하면 에티켓
없다고 할 거 같은데.
잘 보이고 싶은데 음.
에휴. 펜을 다시 던진다. 이러니 어느 여자가 나를 좋아할까. 그 분이야 나를 그래도 좋게 봐주신 거 같지만
이러다 금방 지치겠지. 후. 연애를 잘하고 싶은데.
학교 다닐 때도 나는 잘하는 과목만 열심히 했다. 수학 과학은 나름 자신있었지만 언어는 영 빵점이었다.
못하는 과목을 좀 보강하면서도 공부를 해야하는데 그냥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과목만 공부했다.
나는 연애도 그런 거 같다. 자신이 없으니까 적극적이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또 반문하게 된다. 내가 정말 그
여자 분을 좋아하나? 같은거.
물론 좋다. 나랑 이야기 하면서 하나하나 장단 잘 맞춰주고 웃어주고, 이쁘고, 또 적극적이고, 어… 뭐 여튼
다 좋은데. 음.
그리고 또 새삼 그렇게 좋은 분이 왜 나를 좋아하겠어, 하는 생각에 그저 또 머리를 긁적이게 되고, 연애는
참 어려운거다 생각이 또 든다. 아까부터 옆에 휴대폰을 놓고서는 계속 만지작 만지작 건드리고만 있다.
움. 일단 부딪혀보는 셈으로 전화를 해봐? 아 떨려. 아 조금만. 일단 할 말이라도 더 생각해보고 전화하자.
음.
가끔 생각한다. 연애도 뭐 좀 누가 가르쳐주고 그러면 좋겠다고.
조용한 사무실에 한 남자의 이름이 울려퍼진다.
"김상민씨"
조금 더 높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불리우고, 그때까지 여전히 그 이름의 주인공은 반응이 없다. 그리고 심상
찮은 그 목소리 톤에 주변 파티션 사람들의 시선까지 모였을 그 무렵…
"김상민씨!"
호통까지는 아니지만, 충분히 사무실 사람 전체가 움찔하며 쳐다볼 정도의 목소리 톤이 되자 그제서야 그
이름의 주인공이 정신을 차린다.
"어, 어…네, 네. 쓰읍. 네"
그리고 그는 곧 자신을 부른 이가 최근 그렇잖아도 자기를 마뜩찮게 보는 강 부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난다.
"잠깐 회의실에서 봅시다"
"요즘 밤에 잠 안 자고 뭐해? 어? 뭐 맨날 술이라도 마시나?"
강 부장의 물음에 상민은 면목 없다는 듯 허벅지만 비비다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시잖습니까. 저 술 못하는거"
강 부장은 가볍게 콧바람을 내쉬며 물었다.
"그럼 뭐야? 밤에 잠 안 자고 뭐해? 뭐, 여자 만나나?"
하지만 척 보면 알잖는가. 여자는 커녕 요즘은 어째 하루가 갈수록 무서운 속도로 아저씨 화 되어가는
폼이 척 봐도 여자가 있을 리가 없다.
"없습니다. 여자는 무슨…"
"그럼 뭐하는데?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
상민은 잠시 입맛을 다시다가 "죄송합니다. 요즘 좀 이래저래 잠을 설쳐서…" 하고 또 고개를 꾸벅한다.
그러나 오늘은 그 정도 넘어가 줄 수는 없다. 이미 몇 번이나 지적했고, 또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식곤증
이나 춘곤증 레벨이 아니라 이건 숫제 하루 일과 중에 반을 조는 판이니 가볍게 넘길 수가 없다.
"이유를 알아야겠어. 어디 뭐, 몸이라도 안 좋은거야?"
그렇잖아도 지지난 달에 과로로 회사에서 쓰려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뇌진탕까지 온 유 대리의
껀도 있고 해서 회사 측에서는 매니저급 직원들에게 부하 직원들 건강을 각별히 챙기라는 사장 지시도
있었다.
상민은 입맛을 다시는 듯 대답을 주억거린다. 지난 2년여간 그를 데리고 있으면서 그에 대해 적당히 다
알 거 아는 강 부장으로서는 혀를 끌끌 차며 "솔직히 왜 그러는데? 어? 이유를 알아야 뭐 도와주던가
할 거 아냐" 하며 답을 독촉했다. 상민은 뒷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실은 요새 게임에 빠져서‥"
아주 예상을 못한 대답은 아니지만 역시나 너무도 한심한 대답인지라 강 부장은 속에서 한숨이 다 쏟아
졌다. 내가 이런 것들을 데리고 일을 한다, 소리가 목구멍을 넘어온 지경이었지만 간신히 참은 그는 또
물었다.
"거 뭐, 디…뭐더라. 거 얼마 전에 뉴스에서 나온, 애들이 줄서서까지 사간 뭐 그 게임?"
상민은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고, 강 부장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아니 김상민씨 나이가 몇 이야. 게임하느라 밤을 새서 낮에 이 모양이라는게 말이 돼? 아 우리 아들,
초등학교 5학년 아들도 그렇게까지는 안 해. 아니 참 김상민씨 나이를 생각해보라고"
상민은 그저 꾸역꾸역 고개를 끄덕이며 "죄송함다. 주의하겠습니다" 하고 듣고 있었지만 그게 또 은근히
얄밉다.
"일단 오늘 일은 내 앞으로 시말서 쓰고, 앞으로 한번만 더 그러면 회사 차원에서 징계할테니 그리 알아.
뭐 이의 있나?"
'시말서'에 이어 '징계'까지 이야기까지 나오자 생각보다 좀 뜻밖이라는 듯 상민이 다급한 표정으로 또
말한다.
"아니 부장님, 잘못했슴다. 아 근데 시말서에 징계라니, 아 물론 쓰자면 쓰지요. 근데 이렇게 확 문서화
시켜놓으면… 아 부장님 잘못했슴다. 한번만 선처해주십쇼"
뻔뻔하다고 해야할지 넉살이 좋다고 해야할지. 가끔 보면 참 얄미울 정도로 능글맞은게 좀 불편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또 이렇게 매달리면 독하게 밀고 나가기도 미안할 정도로 천연덕스러운게 이 '김상민'
이란 사원의 장점이고 또 단점이다.
"정말 잘할 수 있어? 어?"
"아 물론입니다"
누그러진 것을 보자 벌써 표정에 웃음을 확 띄우며 옳다꾸나 대답을 하는 그를 보며 한번은 봐주기로 한다.
"그래, 그럼 내일부터 또 지켜보겠어"
그렇게 말하고 스윽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상민이 "아 부장님" 하고 또 부른다. 또 그 능글맞은 아부인가,
싶어 슬몃 떠오르는 웃음까지 겨우 지우면서 물었다.
"뭐? 또 그 놈의 부장님 존경합니다, 말하려고?"
하지만 이번에 상민의 얼굴은 꽤 진지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저기, 부장님. 내일부터 한 3일만 연차를 써도 될까요?"
참 얄밉게도 커피를 한 모금 쪼옥 빨대로 빨면서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김곰남은 씁쓸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마른 남자 좋죠. 옷빨도 잘 받고, 하하"
하지만 세상에 소개팅 자리에서 자기와 정반대의 스타일이 취향이라는 여자의 말에 기분 좋을 남자가
어디있을까. 솔직한 마음 같아서는 걍 바로 일어서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는 꾸욱 참았다.
그런 그에게 은정은 물었다.
"곰남씨는 어떤 여자가 취향이에요?"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에 독설을 쏘아버릴까 했지만, 순정남인 곰남은 진솔하게 말했다.
"저는… 착하고, 어른 잘 모시고, 예의바르고, 진솔하면서도 밝고, 건강하고, 음, 그리고 상대를 잘
배려하는 타입의 여자분을 좋아합니다. 가정적이고, 에, 그리고 아이도 잘 키우고 그런 여자분"
그리고 순간 소개팅 자리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녀 역시 무어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
이리라. 김곰남은 속상했다. 그래도 간만에 서울 나온다고 멋부리며 비싼 옷도 해입었는데. 으휴.
그리고 그때 그녀가 말했다.
"곰남씨가 찾는 분은, 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거 같네요 호호"
김곰남은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오늘부터, 은정씨는 저런 여자가 될 겁니다"
김곰남은 품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고, 그때 살짝 보인 품 안에는 유리톱날이
붙은 채찍이 언뜻 엿보였다.
…어쩌면 당신의 내숭스러운 여친, 그녀의 실체는 저럴지도 모릅니다.
특히 인터넷 오래하고 어지간한 Geek스러운 남자친구들 못지 않게 웹 계의 이슈에 해박하고, 오덕
스러운 면이 없잖아 있으며(만화나 게임 좋아하고), 결혼/시댁/연애의 매너 등 몇몇 이슈/키워드에
대해 다소 히스테릭할 정도의 스테레오적 반응을 보인다면 특히나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그게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보통의 여자애들보다 남자들의 숨은 괴벽에 대해 조금은 더
이해를 해줄 가능성이 있고…음, 뭐 여튼 뭐 더 있겠죠.
다만 단점이 있다면 당신이 무엇인가 실수를 했을 때, 그녀의 '인터넷 친구'들은 한결같이 외칠 것
입니다.
"헤어져"
라고.
발걸음은 무겁고 마음은 어두운, 저 구름 너머 노을만이 그저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어설프게 위로해주려는
것 같아 눈물까지 쏟아질 것 같은 그런 마음에 한없이 기분이 다운된다.
몸까지 천근만근 무거워져, 집에 가자마자 널부러져 자고 싶어진 그런 퇴근길… 문득 눈에 들어온 언제나의
동네 바. 잠깐 고민하다 칵테일 한잔만 하고 가자, 하고 나 자신을 잡아 이끈다. 들어서자 여기 바만의 살짝
기분좋은 남자향수 냄새가 내 코를 간지럽히고, 그리고 그 냄새를 유독 싫어했던 혜지 생각에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는 그렇게나 안 맞았다.
"진 토닉이요"
주문을 하고는 묵묵히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 거린다. 울리지 않는 휴대폰, 그리고 당장 내일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때려치우고 싶은 회사. 이유없이 전화 목록을 흘려보내다가 짜증스러운 직장 사람들 번호가 눈에
들어오자 가벼운 스트레스가 내 콧가에서 귀 뒤로 넘어간다. 어둑한 조명, 푹신한 소파에 기대어 잠깐 눈을
감았다뜨자 조금 어색한 얼굴로 여자 알바생이 내 눈치를 살피더니 곧 쟁반에서 컵받침과 칵테일, 비스킷
대여섯개가 든 작은 접시를 내려놓고 돌아간다.
'후'
미미하게 스쳐지나가는 그녀의 잔향을 맡으며 혼자 괜히 기분에 취해 잔을 들고 한 모금 아주 홀짝 맛을
본다. 오늘의 술맛은 조금, 쓰다.
구석진 자리라서 더 좋다. 구석 벽 기둥을 마주본 내 테이블을 포함한 이 한 평 남짓한 공간은 마치 나만을
위한 공간같고, 그래서 잔잔한 생각에 잠기기 좋다.
이별을 겪으면 이 바에 자주 들렀다. 이유는 그저, 사람이 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저녁 늦은 시간에는 꽤
시끄러울 정도로 북적대지만, 이 무렵의 시간대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 조용한 바의 이
구석자리에서 나는 참 못나게도 많은 눈물을 몰래 훔치곤 했다.
이별을 했을 때도 그랬고, 그저 삶이 막막해질 때면 이 바에 와서 혼자 멍하니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렇게 조금 취할 무렵까지 혼자 술을 마시다보면, 그리고 문득 사람들이 제법 들어왔구나 하고 느낄 무렵
일어나 집으로 향하면, 그 선선해진 밤기운에 조금은 마음이 달래지는 듯 해서 그래서 좋았다.
참 오래도 갈구했다. 그저 영원히 내 편이 되어줄 사람, 친구든 연인이든 선배든 누구든, 항상 옆에서 그냥
내 못난 모습을 보더라도 등 두드려주면서 힘내라고, 가끔은 내 못된 성질까지도 받아줄 그럴 사람이 만약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을 많이 했고, 그리고 또 항상 이 바 이 자리에서 '그런 거 없어도 돼, 그냥
나 혼자 이대로 가면 돼' 하고 씁쓸함을 느끼면 그걸로 되었으니까.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그 어처구니 없을 만큼의 허세에 몸서리를 치고나면 그 지친 마음에 주사라도 맞은
양 조금은 힘이났던 것이다.
언제부턴가, 많은 것을 내려놓고 그냥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을 때, 언젠가 나는 분명히 될 것이다 라는 그
근거없는, 아직까지도 완전히는 내려놓지 못한 그 믿음의 많은 부분을 포기했을 때 나는 참 외로웠다.
그 오만하고도 이기적이고, 몽상에 가득찼던 내가 언제부턴가 그저 적당히 오늘만, 그저 오늘만 무사히
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사실에 깊은 실망과 우울을 느낄 무렵, 그렇게 나는 어느새 애 같은
어른이 되어버렸고, 철들지 못한 그 한심한 자신을 오늘도 해 저문 어둠의 집 근처 골목길로 숨겨버린다.
일단 프로젝트 기간은 6개월 잡고…
너무 대놓고 칼질을 해대면 갱생 프로젝트의 의미도 없고 보람도 없는데다 반전 효과가 떨어지니까 딱
성형의 수준은 적당히 쌍수 및 앞˙뒤트임(상황 봐서), 코 필러, 광대˙턱 보톡스, 이마 라인교정, 턱 라인
지방흡입 + a 정도에서 쇼부 보고 최소 3개월 정도 지켜보면서 이제 적당히 붓기 빠지고 자리 잡기 시작
하면 본격적으로…
D-DAY 약 3개월 전부터 압구정 피부과 끊어서 피부 체질 개선 및 3단계 퍼펙트 스킨 프로젝트 추진해서
D-DAY 전후해서 최소 약 일주일 정도 최고의 피부 상태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 들어가고…
아울러 그 한달 앞서 3개월간 PT 붙여서 꾸준한 체중감량 및 라인 메이킹 작업하고 마지막 한달은 가벼운
헬스와 폭풍 수영 강습으로 몸의 유연성 및 부드러움을 극대화하며 식단은 당연히 전문 영양사 자문 받아
PT 조언 하에 철저한 관리식단. 물론 옆에 전직 모델 출신 매니저 붙여서 1:1 식습관 감시 들어가고
그렇게 피부와 몸매가 슬슬 만들어져가면 다니는 피부과 선생님과 메이크업 전문가 대동 하에 가장 피부에
맞는 화장품 브랜드 선정 후 D-DAY 한달 전 쯤 1차적으로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메이크업 방향 설정하고
이제 D-DAY 일주일 전부터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하루 8시간 이상 지내면서 외모 뿐만 아니라 성격까지
고려해서 가장 어울리는 의상 컨셉 정한 후 최종 후보 스타일 세 가지 정도 준비하고 당일 컨디션 및 각종
변수 고려하여 제일 어울리는 의상으로 드레스업. 또한 레드카펫 드레스급 스타일리시한 디자이너 드레
스도 한 벌 미리 대여하고…
또한 대형 헤어체인 안테나샵 실장급 선생님께 가장 어울리면서도 빛날 헤어스타일 상담받고 그날부터
종합 헤어케어 서비스 들어가다가(D-DAY날까지는 철저히 후진 헤어 스타일링) 드디어 그 날이 오면
헤어 대변신.
마지막으로 연기학원 2개월 속성반 끊어서 철저한 어글리 이미지 메이킹과 또 그에 반대되는 지적인
미인의 행동양태 교습받고 그 외에 발음 교정도 실시. 자세나 걸음걸이 같은 것도 인근 모델학원 선생님과
연계해서 지도받고.
그녀의 준비와는 별개로 이쪽 역시 모델 출신 특급 훈남 일일 비서 준비시키고 경력 15년 이상 베테랑
기사 대동한 링컨 컨티넨탈 리무진 세팅한 후, 종합 무술 10단 이상 단단한 외모의 경호원 2명까지 섭외.
또한 프로젝트 시작일부터 D-DAY 바로 전날까지 일부러 옷도 후지게 입고(라인도 안 드러나게 박시하고
펑퍼짐하며 촌스럽게 입고), 메이크업도 좀 수수하게 하고 다니고(그럼에도 살 빠지고 얼굴이 만들어져
가므로 나중에는 의도적인 어글리 메이크업 실시), 맨날 얼굴 크게 가리는 큰 뿔테안경 같은 걸로 외모
많이 가리고…
이제 D-DAY가 되면 이제껏 준비한 모든 것을 폭발시켜 최대한 멋지게 꾸민 다음, 일부러 지각 출근.
사무실 모두가 조용히 앉아 일할 시간에 일부러 더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 내면서 사무실에 등장.
사람들이 '뭔 소리야' 하면서 흘낏 쳐다보는 순간 전혀 몰라볼 미인이 들어오니까 시선집중 받으면고
그중 그나마 동료가 "헉!! 어머, 어머!! 어머 이게 왠일이야 어머!!! XX씨 맞아? 어머, 왠일이야 어어?
오늘 무슨 날이야? 어? 장난 아니네!! 오늘 장난 아니야!!" 하고 호들갑 떨게 만들고
사람들 시선 그렇게 다 집중되면 싱긋 웃으면서 "죄송해요, 오늘 제가 늦었죠…" 하고 머리카락 살짝
귀 뒤로 넘기고 미소.
이제 남자직원들부터 인근 동료까지 "와 이게 누구야…대박,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래? 어? 아니 XX씨
오늘 무슨 선 봐? 어? 장난 아니네?" 하고 감탄 시작하고 옆 파티션의 부장급 직원 하나가 "아니 무슨 일
이야? 어?" 하고 꼬장 피우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면 또 싱긋 웃으면서 "죄송합니다" 하고 웃음으로 애교
떨고 사람들에게서 미친 주목 받으면서 폭풍 메신저 받아가며 일 시작.
막 진짜 회사의 아침을 그렇게 다 뒤집어 놓을 무렵, 이제 점심시간 직전, 다들 나른하고도 슬쩍
예민해져 있을 바로 그 시간에…
뚜벅 뚜벅 남자 구두 소리와 함께 미리 준비해놓은 모델 출신 키 185cm 딱 떨어지는 라인의 훈남이
경호원 둘을 데리고, 손에는 드레스가 들어있는 박스를 들고 들어와서 일부러 살짝 높은 목소리로
사무실에 가장 눈에 잘 띄는 자리 직원에게
"XXX님 자리가 어딥니까?" 하고 물어봄.
일단 블랙 정장 입은 간지남과 어깨 둘이 등장하니 자연스레 사람들 시선 쏠리고, 게다가 그들이
찾는 대상이 오늘의 신데렐라이니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할 무렵 이제 성큼성큼 신데렐라 자리로
가서 그 드레스 박스 건내면서
"아가씨, 오늘 회장님이 이 의상 입고 부디 꼬옥 참석하시랍니다"
하고 말함. 그러면 이제 오늘의 여주인공은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가 "안 갈 거에요" 하고 고개를 젓고
경호원 둘은 조금 당혹스러워하지만 훈남은 슬쩍 미소지으면서
"오늘 꾸미신 것을 보니 이미 준비하신 것 같은데요? 그럼 회사 입구에서 퇴근하실 때까지 기다리겠
습니다. 혹시 몰라 메이크업 아티스트 선생님도 불렀으니 이따가 퇴근하실 때 이 옷으로 갈아입고
메이크업도 확실히 해서 오시기 바랍니다"
하고 다시 몸 돌려 나갈 무렵에
"안 간다고 했잖아요"
라고 여주인공이 말하고, 그때 다시 그 훈남 모델이 진지한 얼굴로 "회장님 연세가 이제 팔순입니다.
건강도 많이 안 좋으시구요. 아버님은 몰라도, 아가씨만큼은 꼭 보고싶어 하십니다. 부디 참석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하고 딱 잘라말하면
조금 생각하는 척 하다가 "이번 딱 한번 뿐이에요" 하고 여주인공이 말하면 이제 그 셋은 퇴장. 그리고
회사 건물 근처 주차장에서 떡하니 링컨 컨티넨탈 리무진 타고 대기.
점심시간 내내 이제 이 이야기가 온 사무실 안에서 대화제가 될 무렵 정작 여주인공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척 하면서 사람들이 막 이것저것 캐물으면 "아… 아니에요. 그냥…", "죄송해요" 같은 답변만
늘어놓으면서 더 사람들의 호기심만 무럭무럭 키우다가
딱 팀장한테만 오후 반반차 낸다고 하고 재가받으면, 그렇게 퇴근 한 두시간 앞두고 드디어 메이크업
아티스트 선생님 올라와서 바로 여직원 휴게실에서 드레스로 갈아입고 변신 시작. 그렇게 딱 퇴근 시간
맞춰서 완벽히 변신하면 다시 사무실 돌아와서 백만 챙기고 아까 그 훈남 비서 에스코트 받으면서
사람들 퇴근할 때 시선 미친듯이 받으며 딱 그 회사 근처에 세워놓은 리무진 타고 어디론가 출발.
물론 그 다음 날부터는 다시 평범한 하루로 돌아오고 사람들이 도대체 XX씨 정체가 뭐야? 어? 하면
"아무 것도 아니에요 정말" 하고 어색한 미소만 지어보이는데
더이상 굳이 수수하고 안 꾸미고 펑퍼짐하게 입고 다니고 뭐 이러진 않으니까 새삼 달리 보이는 그녀
에게 사람들이 놀랍도록 관심갖는
…이런 클리셰적인 개쌈마이 유치 치졸 13류 여성 현실탈출극 같은거 보고 싶은데 뭐 그런 거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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