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지결핍증후군 소설

그 날은 유난히 환자들이 없었다. 그저 11시 무렵에 계단에서 넘어져 무릎이 좀 찢어진 40대 아주머니
하나와 비슷한 시각, 장염 증상으로 남친 손을 잡고 응급실에 온 고2 여고생 하나 뿐. 그 둘은 링거를
맞으며 누워있었고 병실은 그만큼 조용했다. 인턴의 영식은 책상에 턱을 괴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하지마'

간호사 지희가 짖궂은 마음에 영식을 놀려줄까 싶었지만, 옆에 있던 수간호사 수미가 얼른 입모양으로
그녀를 말렸다. 벌써 30시간 가까이 일하고 있는 그가 안쓰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모처럼의 배
려도 보람 없이, 급하게 비상 전화가 왔다.

"네, 스박병원입니다"

119 전화였다. 그리고 전화의 내용을 들은 수미는 얼굴이 굳어졌다.

"알겠습니다"

수미는 재빨리 "긴급상황! 지희야, 영식씨 깨워. 그리고 지금 환자 격리시켜야 되니까 서둘러! 빨리!
가영이 너도 CHL 준비하고, 대기팀 빨리 내려오라고 해" 하고 상황을 지시했다. 화들짝 놀라 깨어난
영식은 수미에게 물었다.

"무슨 환잔데요?"

그리고 수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간지결핍증후군입니다"



간지결핍증후군. 2011년 가을,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을 시작한 신종 괴질로 감염자는 감염 즉시 찐따가
되고 그 접촉자 역시 감염자와 공기 접촉만으로도 덕후에 이르기까지 하는 최악의 감염증이었다. 그 때
문에 외국에서는 '메두사 신드롬'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신종 질환이었다.

"빨리!"

앰뷸런스에서 환자가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마침 그 날은 세계적인 응급간지학 권위자 김박스가 병원
인근에서 심야영화를 보며 놀던 중이었기에 바로 병원에 도착했다.

"이런 맙소사…"

섹시한 36-24-36의 몸매를 갖고 있던 환자는 이미 엄청난 속도로 병이 진행되어 온 몸에 급성 비계가
증가하고 피부에는 여드름과 기미가 돋아나고 있었다. 머리는 그 와중에도 계속 빠져 이마 라인이 넓어
지는 것이 눈으로 보일 정도였으며 가슴마저 작아지고 있었다.

"큰일났구만"

이 분야의 권위자인 박스에게도 이 정도의 급성 케이스는 보다보다 처음이었다. 아니 그 어떤 질병을
통틀어도 이 정도로 진행속도가 빠른 것은 에볼라 바이러스의 변종이나 그 예가 될 수 있을까.

"에비앙 이세이 미야케 버전 500cc 투입하고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하프샷 주사해. 악세사리 팀에 연락
해서 2011 F/W 반 클리프 아펠 빼를리 컬렉션 뱅글이랑 티파니 마라케시 컬렉션 링 당장 가져오라고 해"

서둘러 그녀에게 간지액 에비앙이 투입되었다. 수미는 에스프레소를 퍼넣어도 될까말까인 판에 아메
리카노 그것도 하프샷을 투입해서 씨알이나 먹힐까 걱정이었지만 어쨌든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에게
거역할 생각은 없었다.

"저 그런데 빼를리 컬렉션이면…"

지희는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1천만원대 뱅글. 너무 과한 간지 투입은 오히려 짝퉁의심면역반응이
우려된다는 말이었지만 김박스는 그녀의 손목을 들어보였다. 까르띠에였다.




"이번 케이스의 경우, 바로 그런 점에서 매우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질문 있으신 분?"

김박스의 사례 발표가 끝나자 곧바로 영식이 손을 들었다.

"에, 제가 당시 당직이었는데요, 에비앙, 그것도 한정판의 투입이나 명품 악세사리로 긴급 간지수혈은
상식적인 대응이었습니다만, 커피에 있어서 스벅 아메리카노 하프샷을 투입한건 조금 의외였습니다.
저나 수간호사 수미씨는 당연히 에스프레소 투입을 생각했거든요"

박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질문. 우선 그녀가 이미 명품을 자주 즐기는 명품족이었기에 최신 명품 악세사리 투입은 전혀
꺼리낄게 없었지만, 몸에 직접적으로 투입되는 음료의 경우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스
프레소 같은 경우 그 자체의 간지는 우수한 편이나 취향을 제법 심하게 타는 편이기에 간지 측면에서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미 학계에서도 그 부작용 문제 때문에 에스프레소보다는 아메리카노
쪽을 더 간지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다른 질문?"

이번에는 저 뒤에 있던 감성외과의 닥터 리가 손을 들었다. 박스는 그를 가리켰고 닥터 리는
질문을 했다.

"이번 응급치료에서는 최신 명품 악세사리가 이용되었지만, 이는 환자에 따라 적용가능 여부에 큰
차이가 있는 법이고 특히 남자 환자의 경우 그 적용이 매우 까다로운 점이 없잖아 있습니다. 치료비도
엄청난 고가라는 점에서 그리 대중적인 접근이라고 하기 어려운데, 그 점에서 보았을 때 좀 더 대중
적인 접근법으로서 애플의 기기들은 어땠을까요?"

슬그머니 과잉치료에 대한 태클, 그리고 학계 최대의 뜨거운 감자인 '애플이즘' 에 대한 접근이 또
제기되자 학회실의 분위기는 조금 긴장이 감돌았지만 박스는 여유있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피는 파란 색이었습니다"

닥터 리는 그 말에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 앉았다.

"다른 질문?"

이번에는 간호사 지희가 눈치를 보다가 손을 들었다.

"만약 남자환자였고, 역시 삼성맨이었다면, 그리고 개발자였다면 어떤 치료법을 써야할까요?"

김박스는 잠깐 고민을 하다 입을 열었다.

"SM7이 가장 무난한 치료법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기저기서 손을 마구 들었다.

"개발자가 SM7이라니요. 무리수입니다"
"5클래스도 아니고 7클래스라니! 상사시샘 쇼크는 어쩔 겁니까"
"애시당초 SM시리즈로 간지 치료라니 말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얼리어덥터 접근이 현실적이지 않습니까?"

김박스는 손으로 모두를 진정시키고 말을 했다.

"우선 삼성맨인만큼 애플을 비롯한 타 업계의 IT기기 이용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개발자인 만큼
어지간한 패션 등 용모를 통한 치료는 단기간 내에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남자환자인만큼 악세사리
이용에도 제한이 많구요. 따라서 자동차가 가장 현실적인 접근인데, 네 물론 SM5도 아니고 SM7 쯤
되면 무리수가 큽니다만 그만큼 그런 케이스의 경우에는 다른 대안들로는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아직 의사들은 더 물어볼 것이 많았지만 김박스는 수술 시간 문제로 여기서 일단 원내 임시 학회의를
마쳤다.



"가위"

행켈 가위를 건내받은 김박스는 조심스레 무성히 자라난 환자의 코털을 잘라냈다. 그리고 가위를 조금
내려다보다 말했다.

"사실 어제도 말이야, 일단 이 병원의 환경이 딸려서 에비앙에 스타벅스로 대처했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간지결핍증후군에 대해서 에비앙 따위는 쓰지도 않아. 최소한 생제롱이나 슈타틀리히 파킹엔을
간지액으로 투입하고, 커피 역시 코피루왁, 아니 최~소한 COE 커피를 투입한다고. 가위도 이거 봐.
행켈이라니. 무슨 요리해? 참 나. 독일, 스위스 엔티크 미용가위까진 아니더라도 이건 아니잖아"

김박스를 제외하곤 모두 국내파인 의료진으로서는 할 말이 없었고 그저 그의 수술에 잠자코 따를 뿐
이었다. 환자의 복부에 PCC 를 몇 대나 놓으면서 박스는 물었다.

"혹시 이 병원에 에디 슬리먼 팬츠 있어?"

간호사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수미가 조심스레 말했다.

"2006 시즌까지는 있는데…"

박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냥 물어봤어"

그리고는 "루부탱 2011 S/S 스니커즈"를 요구해 환자에게 신기고는 고개를 까딱했다.

"수술 끝"




잠시 휴게실에서 쉬고 있던 김박스. 잠깐 눈이나 붙일까 했지만, 그는 곧 "똑똑" 하고 노크 후 휴게실로
들어온 인턴 영식에 의해 잠을 방해받았다.

"저 박스 선생님, 한 가지 여쭈어보아도 될까요"

사실 조금 귀찮았지만, 박스는 그러라고 했다. 그러자 영식이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박스 선생님의 치료법이 선진 치료법이고, 세계적인 추세에 발 맞춘 방법이라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에서는 아직 여러 무리수가 따르는 것이 현실이고, 또… 간지결핍증후군은 정말로
치료비가 많이 드는 병인데, 거기에 박스 선생님의 치료법으로 치료를 하자면 서민들은 병원비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뭐 그런 생각이 듭니다. 뭔가 한국적 치료에 대한 어떤 대안이나
그런 것은…음…"

박스는 영식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젊은 의학도가, 어떤 해외파 권위자의 권위에 눌리지 않고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그것도 가난한 환자들을 위한 고민을 한다는 것에서 그는 매우 깊은 기쁨과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허준이 동의보감을 집필하게 된 이유에는, 당대의 의학을 모두 집대성하겠다는 뜻도 있겠지만 또한
가장 조선 백성에 맞는 치료법을 적용하겠다는 뜻도 있었지. 너를 보노라니 꼭 허준이 생각나는구나"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맞아. 한국인에게 무조건 해외의 치료법을 무리하게 도입한다고 그게 꼭 좋으라는 법은 없어. 한국인
에게는 산타크로체니 슈타틀리히 파킹엔이니 뭐 그딴 것보단 삼다수가 더 좋을지도 모르지. 한국의
이랜드가 중국에서는 명품인 것처럼 국경을 넘어 가치가 달라지는 것도 많으니까. 그리고 이런 식의
어떤 브랜드에 의존하는 간지는 사실 진정한 간지 치료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야. 근원치료는 전혀
되지 않고 그저 눈속임에 불과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침대 옆에 놓인 미적지근한 삼다수를 한 모금 마신 김박스는 입을 슥 닦고 또 말을 했다.

"간지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여유에서 나오는거야. 몸짱은 아무 옷이나 입어도 어울리는거고 얼짱은 뭘
어떻게 꾸며놔도 간지가 나는 법. 그러나 간지결핍증후군 같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돈빨로 쳐발라야
하는 측면이 있고, 그 부분에서 가장 확실한 효과를 보고 싶어서 그렇게 최고급을 고집하는 것 일 뿐
네 말 자체는 옳아. 없는 사람들을 위한 간지 아이템들을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개발해 봐"

흐뭇하게 웃으며 영식의 머리를 쓰다듬은 박스. 영식은 왠지 자신의 의견이 틀린 것이 아니었단 생각에
벅찬 기쁨을 느꼈다. 영식은 기뻐하며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럼 푹 더 쉬십시요" 하고는 신이 나서 또
밖으로 뛰어나갔다. 박스는 픽 웃으면서 다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저 놈은 크게 될거야'

그리고 그 예언과도 같이, 영식은 먼 훗날 'SPA 브랜드를 이용한 간지추출법'과 '저가 로드샵 화장품을
이용한 저렴이 화장품군 다수 개발'을 통해 빈민들의 간지결핍 증후군 정복에 큰 기여를 한 공로로
노벨위원회로부터 노벨패션상을 수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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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mour.. : 간지결핍증후군 2011-10-29 11:18:39 #

    ... 내용도 다양하지만특유의 필력이 참 매력적이다. 요즘 네이버 웹툰의 패션왕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그런 느낌이면서도 역시 특유의 개그센스를 발휘해주신 한편.http://stylebox.egloos.com/1962365 이런거 안하는데 이 글은 안할수가 없다.세상에 에비앙 이세이미야케버전이 다 뭐야ㅋㅋㅋㅋㅋㅋ ... more

  • 생각보다 짧은 시간 : 뿔테 바이러스 2017-09-14 01:23:08 #

    ... 에게 있어서는 몇 십 시간 이후의 이야기였다. - FIN - http://stylebox.egloos.com/2026070 간지거탑 http://stylebox.egloos.com/1962365 간지결핍증후군 ... more

덧글

  • 1030AM 2011/10/22 04:21 # 답글

    간만에 뜸하더니 이런 뾱빧치는 글을 ㅋㅋㅋ 아아 뭔가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문장을 첨부하여 나의 감동을 되쇄기고 싶건만 어느 하나 버릴 문장이 없구나! 개인적으로는 "에비앙 이세이 미야케 버전 500cc 투입하고.." 에서 어라? 하다가 빵 터졌...
  • 1030AM 2011/10/22 04:42 #

    [간지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여유에서 나오는거야]
  • 시빛 2011/10/22 04:37 # 답글

    올해 랭킹 탑10에 들 명글이다
  • 밤비마마 2011/10/22 06:55 # 답글

    아...제가 앓고있는 병이 바로 이거였군요..!
  • 에피나르 2011/10/22 07:31 # 답글

    우와 이번 글은 진짜 대박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 月虎 2011/10/22 07:57 # 답글

    파란 피가 흐르는 애들도 앱등이 엄청 많습니닷...
  • ㅠ넝 2011/10/22 09:21 # 삭제 답글

    섹스해요 스박님
  • 날쌩이 2011/10/22 10:39 # 삭제 답글

    진짜 여기 몇달보면서 젤 대박이었습니다
  • 라쥬망 2011/10/22 12:56 # 답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Dr K 2011/10/22 13:09 # 답글

    ㅋㅋㅋ 다 좋은데 실습한 학생조차도 폴리클샘이라고 불러주는데 인턴을 영식씨라고 부르는 간호사는 없을겁니다. 그부분을 샘이라고 고쳐주면 더 완벽할듯 ㅋㅋㅋㅋ
  • 대체 2011/10/22 13:09 # 삭제 답글

    스박은 누구인가...남자인가 여자인가..증권맨인가패션글러인가...
  • 지여 2011/10/22 16:30 #

    gay!
  • 보더 2011/10/22 13:43 # 답글

    역시 남자는 차인가!
  • zzzzz 2011/10/22 14:47 # 삭제 답글

    아오 ㅋㅋㅋㅋㅋㅋㅋ 스박님레알웃겨요 ㅋㅋㅋㅋㅋ 미치것다 공부하다가뿜고가요
  • mr2002 2011/10/22 17:45 # 답글

    와 진짜 끝내주는 글이네요 올해 제가 본 글중에 최고의 글인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1234 2011/10/22 20:07 # 삭제 답글

    간져들은 간지결핍증후군 예방을 위해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세번
    이드록시다즈를 마십니다
  • 2011/10/22 22:16 # 삭제 답글

    아니 근데 스박님 이런 종류의 글도 혹시 장르가 있나요?
    전문직에 개드립을 섞는.......... 퓨전 풍자 소설?
    무슨 전문용어가 있을 것 같긴 한데 혹시 아시는분?
  • ㅋㅋㅋ 2011/10/23 00:45 # 삭제

    뭉뚱그려 말하면... 패러디??-_-; 어휘가 딸려서 ㅈㅅ
  • ㅋㅋㅋ 2011/10/23 00:43 # 삭제 답글

    요새 이런게 추세인가? 웹툰 패션왕만 봐도...ㅋㅋ소스는 패션왕소스인데 이게 더 기발하네 ㅋㅋ
  • 스박님팬 2011/10/23 12:53 # 삭제 답글

    아 제가 이래서 여길 못 끊어요. 스박님 사랑해요
  • sinead 2011/10/23 15:16 # 답글

    간지라는건 기본적으로 여유에서 나오는거야... 하 명문이네요 ㅠㅠㅠㅠ
  • 이글 2011/10/23 20:32 # 삭제 답글

    ㅋㅋㅋㅋ최고에요
  • 매기먀기 2011/10/24 04:16 # 삭제 답글

    에비앙 이세이미야케버젼ㅋㅋㅋㅋㅋ깨알같다ㅠㅠㅠ뭔가 하고 보다 뻥터졌으뮤ㅠㅠㅠ으허엉엉 스박님짱이닷ㅋㅋㅋ
  • 레드 2011/10/24 10:10 # 삭제 답글

    아 진짜 스박 당신 정체가 뭐냐고!!!
  • swanybak 2012/03/15 22:51 # 답글

    섹스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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