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광고

# 스타일박스의 소설을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 링크 ]

사이버펑크 2078 : 서울

한때 세계 7위권 경제대국이자 최첨단 IT 기기의 각축장, 한류로 상징되던 아시아 문화수도 대한민국은 급격한 인구감소와 그로 인한 노동력, 세수 감소, 떠밀리듯 맞이한 무리한 흡수통일, 내전, 내수시장 붕괴, 인적자원 유출, 기업 이탈, 무분별한 외국인 노동자 수입 등 온갖 악재의 악순환으로 불과 수십 년만에 극적인 몰락을 맞이한다.

"사업 정리했다더니, 집에 수영장을 깔았다고? 여전히 수입 좋나봐?"
"하이필로폰을 언제까지 쥐고 있을 수 있나. 이제 나도 네오강남 주민인데. 드론카 수입쪽으로 튼지 오래지"
"허허, 이 친구"

썩어도 준치라고, 그나마 강남 벨트만큼은 정치인 경호용 특수부대가 주둔하는 등 어떻게든 국가의 역량까지 동원하여 아직도 고급 번화가로 존재하지만 그 안을 살펴보면 온갖 썩은 정치인이나 불법 사업가들이 고급 주택들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한때 나라를 지탱하던 고학력 엘리트들은 모두 이웃나라로 탈출한지 오래다.

"오빠, 쉬다가"
"레볼루션까지 26만원에 해줄께"
"오빠 잘 생겼다. 공짜로 하고 나 술 한 병만 사줘, 응?"

현재는 폐역이 된, 잠실역과 주둔부대의 경계 저편으로는 화려하다 못해 천박한 네온조명의 사창가가 끝없이 펼쳐진다. 한때 랜드마크로 활약하던 초고층 건물은 그 건물을 중심으로 새로 지어진, 사이사이 거미줄처럼 공중 연결통로로 이어진 4개의 고층 빌딩을 거느린 채 정신없는 건물 외장 라이트로 그 천박함을 치장하고 있다. 100층이 넘는 초고층 클래식 럭셔리 빌딩과 그 일대 반경 7km의 모든 건물이 윤락행위와 그 부속 경제로 돌아가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거대 사창가. 과거의 누군가들이 본다면 수치스럽고 안타까울지 모르나, 오히려 지금은 "섹스 코리아"라는 어둠의 슬로건에 걸맞는 대한민국의 자랑 아닌 자랑거리다.

"ohhhh, fucki'nz gude"
"wow"

여전히 세계적인 미용시술 대국답게 보편적인 윤락녀들의 외모 수준이 높고, 그에 반해 붕괴된 경제로 인해 상당히 경쟁력 있는 가격이 인기의 비결이다. 물론 매력적인 윤락남들의 외모와 서비스 역시 과거 한때 세계를 흔들던 K-컬쳐 아이돌 문화의 흔적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실제로 '하이돌'이라 불리는 상위 3% 꽃미남 윤락돌들 때문에 섹스관광을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도 많다. 국가 GDP의 6%가 이 '섹스 코리아'에서 발생한다.

"8기통 자연흡기 880마력? 아무리 튜닝 빡세게 한다지만 뭔 지랄을 해놓은거야. 오 젠장, 집을 팔아서라도 사고 싶네"
"돈이 부족하시다면 '다른 물건'으로도 거래 가능합니다"

또한 이미 전기 드론과 진공 튜브 트레인을 통한 인력수송이 세계적인 대세로 접어든 가운데, 동아시아에서 내연기관 차량을 실제로 몰아볼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라면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내연기관 자동차들이 아직도 무시못할 비율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대한민국은, 무려 '유연휘발유'까지 적지 않은 비율로 팔리고 있다. 주요 화학공업 기업들이 붕괴되고, 석유생산과 유통이 복마전이 된 덕분이다. 또 그 결과로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이 환경오염 이슈로 한국을 수시로 몰아붙이지만, 그런 것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한국이다. 단지 길거리의 오래된 차량들은 대부분 과거 자국이 생산한 국산자동차라는 점이 과거의 영광을 조금이나마 떠올려 볼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 3동아빠 : K-2? 으흠, 혹시 10만원 가능한가요? ]
[ 꽁통지 : 30만원이라고 써놓은거 안 보여요? ]
[ 3동아빠 : 그럼 2031 수통은요? ]
[ 꽁통지 : 3천원에 가져가쇼 ]

치안부재와 군대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 저하는 결국 불법총기 시장을 융성하게 만들었고, 시민들은 각자 도생을 위한 무기와 각종 군용장비를 사이버 암시장 '캐롯랜드'를 통해 손에 쥐었는데 가장 흔한 무기는 역시나 손에 익은 K-2였다. 종종 K-1이나 K-5를 찾는 이도 있었지만, 역시 K-2가 일반적이었다. 한가지 우스운 점이라면 그 모든 총기와 장비들은 과거 치장물자라며 행보관들이 그렇게 수십 년간 창고에 쳐박아두던 새 것들이라는 점이다. 아끼다 똥이 된 정도를 넘는 블랙 코미디였다.


"돈 있냐?"
"없어요"
"그럼 몸으로 때우던지. 빨아"
"먼저 로우인 하고 하면 안되요?"
"야, 꺼져"

전신에 피어싱을 박고, 새로운 IT 강국으로 떠오른 필리핀산 싸구려 사이보그 장비를 팔에 이식한 길거리 10대 갱스터들이 로우인을 대낮에 빨며 돌아다니는 최악의 치안부재 동네 신림. 분명히 두어달 전 새로 페인트칠을 한 것 같은데 또 오늘 원인불상의 화재로 시꺼멓게 그을린 타임스티치몰은 오히려 그 깨진 창문들이 현재의 신림에 잘 어울렸다. 그래도 신림은 사정이 많이 나은 편이다. 최소한 젊은 사람들을 구경이라도 할 수 있고, 최소한의 경제활동이라도 이뤄지는 곳이니까.


"요즘 어때"
"똑같지 뭐. 아주 죽갔어. 오늘 국밥 두 그릇 판 게 다여"
"고기는 어찌 구했대?"
"우리 마누라가 공기총 하나는 기가 막히게 쏘잖여. 비둘기 새끼들이 전깃줄에만 앉았다 하면 기냥!"

경제의 붕괴는 자연스럽게 복지의 붕괴로 이어졌고, 대한민국의 노인들은 철저히 소외되었다. '암 또는 치매 발병시 안락사 허용'이라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처절한 인권 사각지대는, 사실 오히려 죽음을 택한 자에게는 가장 확실한 복지였다. 60%가 넘는 노인들이 하루 한 끼로 살아간다. 제대로 된 약을 구하지 못해 저질 마약으로 진통제를 대신하고, 결국에는 범죄를 저지르다 젊은이들의 총에 맞아 죽는다. 2078 대한민국 노인들의 가장 흔한 죽음의 방식이다. 그들은 오천원짜리 비둘기 탕국 하나를 사서 매일 한 끼씩 3일간 먹고, 배양육 한 덩이를 훔치다 죽는다.


"여성가족부를 부활시킬 예정입니다. 앞으로 여성부는 이 나라 성매매 노동자들의 이익과 위생을 증진시키며 외국인 성구매자들에 대한 최대의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또한 이 나라 모든 남성 성매매자들의 이익을 위해서도 힘써 노력할 것입니다"

물론 그래도 나라가 온전히 망한 것은 아니다. 절대 다수의 국가 기간 산업이 무너졌을 지언정, 예나 지금이나 나라에 충성하던 인력풀 하나만큼은 이해 안 가도록 좋던 나라 아니던가. 여전히 뛰어난 인재들은 수도 없이 튀어 나오고 있다. 국가 공인 해커부대, 국가 공인 마약 생산기지, 국가 공인 생화학 무기 판매, 국가 공인 산업 스파이 등 유수의 인재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달러와 위안을 벌어와 무너져 가는 나라를 지탱하고 있다. 거의 반 세기 만에 부활한 정부 부처 '여성부'가, 과거와는 180도 다른 목표로 업무를 행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말이다.



"欢迎"

중국어와 영어가 어지러이 간판들을 화려하게 수놓은 테헤란로와 강남대로의 붉은 네온싸인 중화빌딩 숲을 지나 학동을 거쳐 압구정에 이르면 비로소 한숨 돌리는 것이 가능하다. 적어도 이 동네는 안전하다. 인상 좋고 젠틀한 중국의 부자들이 과연 선진국 국민답게 선한 인상으로 웃으며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다. 100미터당 300대가 넘는 밀도로 ICTV가 깔려있는 부자 동네에서 범죄를 저지를 멍청이도 없지만 말이다.

지난 수십 년동안 꾸준히 세를 불려 이제는 대한민국 인구 2/5를 차지하는 이중국적의 중국인들은 현재 제 1야당 '인민당'을 적극 지지하여, 향후 10년 내에 중한통일의 목표를 이루고자 하고 있다. 비록 지난 대선에서는 인민당 대선후보 장츠이지가 본토 대륙의 부인 이외에도 한국인 첩 열 명과 12명의 혼외자를 갖고 있다는 충격적인 폭로가 터지면서 아슬아슬하게 '민주국민파워당'의 임선영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차기 대선은 사실상 장츠이지가 유력하다. 어차피 지난 총선에서 인민당이 202석을 차지함으로서 새로운 한국인이 대통령이 되어봤자 식물대통령이 확실시 되지만.



"1소대 총원 8명, 휴가 1, 생리열외 1, 훈련열외자 1 이상 3명 제외 5인 집합 준비 끝!"
"쉬어"

대한민국의 국군은 극적으로 줄어, 한때 60만 상비군을 자랑하던 전력은 고작 7만 명이 되었다. 한 해에 아이가 9만 명도 태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것도 용한 상황이다. 군 복무기간은 4년 2개월. 장교 입대시 무려 8년. 지난 2032년 이래 남녀 모두 복무를 하는 군대이며, 긴 복무기간에 의한 국가 경쟁력 상실에 대비하기 위하여 군 입대 시기는 16세로 조정되었다. 또한 복무 중 고등학교 교육을 병행한다. 긴 복무기간 때문에, 많은 군인들이 아이를 낳아 전역을 시도한다. 물론 그런 경우 높은 확률로 남자들이 그녀를 떠나지만 말이다.

"육아는 현실이죠. 아 물론 서로 합의 하에 낳고, 덕분에 전역한 것도 맞고 혜영이한테 너무 미안하긴 한데, 육아는 현실이니까요. 저도 살아야죠"



…혹자는, 아니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완전히 몰락해버린 2078년도의 대한민국을 지옥이라 부르지만, 사실 그래도 남한 지역의 경우에는 버티고 살면 어떻게든 살아지기는 한다는 점에서 지옥이라 부르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사실 진짜 지옥은 통일과 내전 과정에서 골고루 방사능에 오염된 북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아이 셋을 낳으면 그 안에 반드시 기형아가 있고, 환갑을 넘게 살면 85%의 확률로 암이 발병하며, 강물로 농사를 지어 먹었다가는 2년 내에 사망하는 현세에 존재하는 지옥 2078 북한. 사실 그 덕분에 방사능 차폐 기술이 오늘날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천만 인구가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아 30만이 된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그 모두는 멀리서 보았을 때 느끼는 비극일 따름이다. 정작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의외로 그리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지금 영등포 지하상가 인근 하수도에서 죽어가고 있는 노숙자 김박스 노인의 삶이 그러하다. 그는 엊그제 길바닥에서 용케도 바이아그라를 주웠다. 그리고 무려 55년 만에 힘차게 용솟음한 그의 분신과 함께 혼자만의 해피타임을 가질 수 있었다. 완전히 성적 능력을 상실한 자라도, 인체 본연의 ATP를 정력으로 치환할 수 있게 만든 이 비싼 신약이 어떻게 길바닥에 굴러다닐 수 있었는지는 미스테리지만, 아마도 어젯밤 광란의 파티를 즐기던 어느 부자의 주머니에서 흘렸던 것이겠지.

"흐흐…"

물론 무려 나흘간 굶은 구십대 노인이 초강력 향정신석 약물을 먹고 자위행위를 했으니 그 몸이 결코 성할 리 없으련만, 그래도 그는 수십 년만의 쾌감을 맛볼 수 있었고,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게 죽어가고 있었다. 덧없는 삶과 덧없는 죽음.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시대정신인지도 모른다.

귓가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삐 소리와 함께, 죽음이 정말 가까이 왔다는 것을 느낀 그는 눈을 감은 채로 피식 웃었다. 수십 년 전, 짓궂은 악취미처럼 써내려간 그 단편소설이 정말로 자신의 삶과 죽음을 이토록 이렇게 리얼하게 그려낸 것이었음에 놀라움과 어이없음을 느끼며 말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