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징 짜는 윤재를 향해, 손에 묻은 케챱을 핥은 해창이 형이 별 일 아니라는 듯 쏘아붙인다.
"야, 니 돈 많아? 아니면 니네 집 돈 많아? 너 몇 살이야"
윤재가 촉촉한 눈시울을 겨우 진정시키며 "22살이요" 하고 대답한다. 그러자 해창이 형은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다 헤어지게 되어있어, 니들 나이 때는. 보통 결혼 암만 빨리해도 20대 후반이고, 여차하면 30대 중반인데…니가 뭐 씨발 지금 그 여자친구랑 10년 연애할거 같애? 백퍼 중간에 헤어지지. 안 그래? 그리고 대충 7~8년 연애해서 거의 30 됐다고 쳐. 그때는 뭐 니 여자친구랑 결혼할 돈 있어? 없지? 그럼 그때가서 놓아줘야 되는거야"
남 이야기가 아니기에 다들 말이 없어진다.
"자, 니네들 각자 최소로 니 돈 1억, 부모님이 물려줄 돈 최소 3억, 그 정도는 있어야 어디 신혼집 전세라도 잡고 사는거야. 그 돈 없으면 뭐 결혼도 못하는거고, 그냥 결국 언젠가는 여자친구가 다 헤어지자고 할 거야. 그게 다 니들 팔자라고"
해창이 형은 남은 감튀 몇 개를 한 입에 넣고 우물대더니 말을 이어간다.
"장담하는데 니들 중에 반은 나처럼 결혼 못 해. 그냥 잘해야 비슷한 수준 여자 만나서 대충 원룸에서 동거나 하며 살던가, 그냥 혼자 사는거야. 평생. 그게 니들 팔자야. 니들 비하하는게 아니라 현실이 그래"
모두 다 암담해진다. 그러나 형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결혼한 새끼는 뭐 행복한가? 아니지. 삼분의 일은 이혼 엔딩이야. 남은 삼분의 이는 그럼 즐거울까? 그것도 아냐. 애에 치이고, 마누라에 치이며 인생 존나게 고달픈거야. 뭐 정말 10% 정도 되는 애들은 행복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아니라고. 니들도 이젠 잘 알잖아"
뭐, 보고 듣고 자란게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다 좆도 아닌거야. 20대 초반의 이별? 매달려봤자 좆도 없는거라니까. 그냥 니들 나이 때에는 그저 되는대로 오지게 미친 놈처럼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니는게 최고고, 그냥 막 별 지랄 다 하는게 짱이야. 뭐 그게 말처럼 쉬운건 아니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다 헤어진다, 라는 해창이 형의 말이 나름 통했는지, 윤재의 표정도 조금은 시크해졌다.
"그리고 잘 살면 또 뭐해. 어차피 한 20년 30년 지나면 아무리 이쁜 마누라도 다 늙은 티 나는데. 외로운 것보단 낫지만, 대신에 고생도 많지. 안 그러냐. 니네 부모님들 어디 부부싸움 안 하든? 그 유전자 어디 가겠어. 다 똑같은거지"
뭐 사실 이쯤해선 해창이 형도 조언할 수준의 이야기는 아닌 듯 하지만 그래도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 중 현중이가 물었다.
"그럼 형은 왜 사는 건데요. 다 좆도 없으면"
하 시크한 새끼. 그 어려운 말을 시원하게도 꺼낸다. 그러자 해창이 형은 주먹을 쥐고 위 아래로 흔든다.
"뭐 있겠냐? 존나게 딸이나 치고, 게임이나 좀 하고, 영화나 보고, 인터넷이나 보고, 종종 혼술이나 마시고, 월급 받으면 취미생활이나 하고, 삽겹살 먹고 치킨이나 좀 뜯고 곱칭이나 먹고, 그렇게 그냥 씨발 사는거지"
다들 한심하다고 생각하지만, 모두들 자신들의 삶이라고 크게 다를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새삼 삶이 허무하다고 느낀다.
"진짜 삶이 존나 뭐 없네요"
용주가 한숨을 쉬며 공감했다. 말 수도 적고, 몸은 돼지처럼 살찐 아다 용주. 우리 중 그 누구도 그가 서른 이전에 동정을 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진짜 너무 좆같은거 아니에요? 뭐 이래 씨발. 우리만 왜 이렇게 불공평한 건데요"
윤재가 급발진을 하지만, 정작 분위기를 이 사단을 낸 원흉 해창이 형은 피식 웃는다.
"그래도 딸칠 때는 기분 좋잖아"
차마 옆 테이블에서 들을까 두려워 지는 이야기다. 다행히 손님 없는 시간대다. 손님이라고는 우리 빼면 저 멀리서 정신없이 수다 떠는 커플 두 쌍 뿐이다.
"아니 씨발 인생에 행복이 딸딸이가 뭐에요 진짜. 좀 더 고차원적인 뭐 없어요?"
내 말에 해창이 형은 얼굴을 쓸어내린다.
"결혼해서 잘 사는 그런 애들 빼고, 형 또래의 장가 못 간 아저씨들은 대충 세 부류가 있어. 하나는 뭐 평생 여자를 지 리스 차 바꾸듯이 적당히 갈아치워 가면서 멋있게 사는 애들. 직업이 좋던가, 배경이 좋던가, 본인이 잘 났던가. 여튼 니들이 워너비로 삼지만 절대 그렇게 못 사는 잘난 새끼들. 또 하나는 나같은 찐따. 니들도 마찬가지야. 어지간하면 나처럼 될 거임.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부류가 뭐냐면…"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다.
"타고나기는 찐따로 태어나도, 대충 빡시게 살다보면 잘 살아지기도 해. 보통은 중간에 알아서들 타협하고 적당히 어떻게든 짝 찾아서 대충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고. 니들이 존나 어릴 때는 인서울 기본에 SKY는 몰라도 최소 서성한은 웃으며 갈 줄 알았는데 현실은 지잡대 가는 것처럼, 대부분은 그렇게 타협을 해버린다고. 내 주제에 대충 이만하면 됐지 뭐 하면서. 근데 존나 소수지만 안 그런 새끼들이 있어. 뭐 좆도 없는데 존나게 야심만만한 새끼들"
나는 이때 해창이 형이 준식이 형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타협할 때 안 하고, 끝까지 곤조 있게 뭐 해나가는 새끼들이 있다고. 그게 직업이든 취미든 꿈이든, 대충 하다가 나이 쳐먹고 접는게 아니라, 그냥 설렁설렁하는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죽 뭐 곤조 있게 가는 새끼들. 그러면 뭐가 되긴 되더라. 그게 존나 멋있긴 해. 뭐 본인은 존나 고생했겠지만"
뭔가 암담하고 답 없는 현실의 벽 앞에서, 아주 작디 작은 희망의 빛을 본 기분이었다. 나는 뭘 꾸준히 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리고 그게 가능할지도. 아마 나는 적당히 선에서 타협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나도 30대 초중반에 만나는 적당한 여자랑 대충 결혼해서 살겠지. 현실에 타협해서.
"그럼 형은 뭐에 타협한 거에요?"
윤재의 말. 물론 해창이 형은 굳건한 얼굴로 주먹을 쥐고 손을 위 아래로 흔들 뿐이었고, 모두가 탄식 같은 웃음을 터트릴 때, 현중이 창 밖을 보며 혼자 뭔가 결연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본다. 녀석도 무언가의 결심을 한 것일까.
"뭔 생각 하냐?"
용주 역시 그것을 봤는지 현중에게 물었다. 현중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역시 주먹을 들어 위아래로 흔든다.
어느새 오후도 꽤나 지나가고 어둠이 다가와 이 패스트푸드 가게 안을 아늑한 황금색으로 물들이는 그 순간, 우리와 같은 암담한 청춘들은 그렇게 허무하게 삶의 비전들을 잃어버린다. 그 누군가의 가벼운 말 몇 마디가 아닌, 이미 예감하고 있던 답답한 공감에 의해.
- 끝 -
"야, 니 돈 많아? 아니면 니네 집 돈 많아? 너 몇 살이야"
윤재가 촉촉한 눈시울을 겨우 진정시키며 "22살이요" 하고 대답한다. 그러자 해창이 형은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다 헤어지게 되어있어, 니들 나이 때는. 보통 결혼 암만 빨리해도 20대 후반이고, 여차하면 30대 중반인데…니가 뭐 씨발 지금 그 여자친구랑 10년 연애할거 같애? 백퍼 중간에 헤어지지. 안 그래? 그리고 대충 7~8년 연애해서 거의 30 됐다고 쳐. 그때는 뭐 니 여자친구랑 결혼할 돈 있어? 없지? 그럼 그때가서 놓아줘야 되는거야"
남 이야기가 아니기에 다들 말이 없어진다.
"자, 니네들 각자 최소로 니 돈 1억, 부모님이 물려줄 돈 최소 3억, 그 정도는 있어야 어디 신혼집 전세라도 잡고 사는거야. 그 돈 없으면 뭐 결혼도 못하는거고, 그냥 결국 언젠가는 여자친구가 다 헤어지자고 할 거야. 그게 다 니들 팔자라고"
해창이 형은 남은 감튀 몇 개를 한 입에 넣고 우물대더니 말을 이어간다.
"장담하는데 니들 중에 반은 나처럼 결혼 못 해. 그냥 잘해야 비슷한 수준 여자 만나서 대충 원룸에서 동거나 하며 살던가, 그냥 혼자 사는거야. 평생. 그게 니들 팔자야. 니들 비하하는게 아니라 현실이 그래"
모두 다 암담해진다. 그러나 형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결혼한 새끼는 뭐 행복한가? 아니지. 삼분의 일은 이혼 엔딩이야. 남은 삼분의 이는 그럼 즐거울까? 그것도 아냐. 애에 치이고, 마누라에 치이며 인생 존나게 고달픈거야. 뭐 정말 10% 정도 되는 애들은 행복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아니라고. 니들도 이젠 잘 알잖아"
뭐, 보고 듣고 자란게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다 좆도 아닌거야. 20대 초반의 이별? 매달려봤자 좆도 없는거라니까. 그냥 니들 나이 때에는 그저 되는대로 오지게 미친 놈처럼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니는게 최고고, 그냥 막 별 지랄 다 하는게 짱이야. 뭐 그게 말처럼 쉬운건 아니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다 헤어진다, 라는 해창이 형의 말이 나름 통했는지, 윤재의 표정도 조금은 시크해졌다.
"그리고 잘 살면 또 뭐해. 어차피 한 20년 30년 지나면 아무리 이쁜 마누라도 다 늙은 티 나는데. 외로운 것보단 낫지만, 대신에 고생도 많지. 안 그러냐. 니네 부모님들 어디 부부싸움 안 하든? 그 유전자 어디 가겠어. 다 똑같은거지"
뭐 사실 이쯤해선 해창이 형도 조언할 수준의 이야기는 아닌 듯 하지만 그래도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 중 현중이가 물었다.
"그럼 형은 왜 사는 건데요. 다 좆도 없으면"
하 시크한 새끼. 그 어려운 말을 시원하게도 꺼낸다. 그러자 해창이 형은 주먹을 쥐고 위 아래로 흔든다.
"뭐 있겠냐? 존나게 딸이나 치고, 게임이나 좀 하고, 영화나 보고, 인터넷이나 보고, 종종 혼술이나 마시고, 월급 받으면 취미생활이나 하고, 삽겹살 먹고 치킨이나 좀 뜯고 곱칭이나 먹고, 그렇게 그냥 씨발 사는거지"
다들 한심하다고 생각하지만, 모두들 자신들의 삶이라고 크게 다를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새삼 삶이 허무하다고 느낀다.
"진짜 삶이 존나 뭐 없네요"
용주가 한숨을 쉬며 공감했다. 말 수도 적고, 몸은 돼지처럼 살찐 아다 용주. 우리 중 그 누구도 그가 서른 이전에 동정을 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진짜 너무 좆같은거 아니에요? 뭐 이래 씨발. 우리만 왜 이렇게 불공평한 건데요"
윤재가 급발진을 하지만, 정작 분위기를 이 사단을 낸 원흉 해창이 형은 피식 웃는다.
"그래도 딸칠 때는 기분 좋잖아"
차마 옆 테이블에서 들을까 두려워 지는 이야기다. 다행히 손님 없는 시간대다. 손님이라고는 우리 빼면 저 멀리서 정신없이 수다 떠는 커플 두 쌍 뿐이다.
"아니 씨발 인생에 행복이 딸딸이가 뭐에요 진짜. 좀 더 고차원적인 뭐 없어요?"
내 말에 해창이 형은 얼굴을 쓸어내린다.
"결혼해서 잘 사는 그런 애들 빼고, 형 또래의 장가 못 간 아저씨들은 대충 세 부류가 있어. 하나는 뭐 평생 여자를 지 리스 차 바꾸듯이 적당히 갈아치워 가면서 멋있게 사는 애들. 직업이 좋던가, 배경이 좋던가, 본인이 잘 났던가. 여튼 니들이 워너비로 삼지만 절대 그렇게 못 사는 잘난 새끼들. 또 하나는 나같은 찐따. 니들도 마찬가지야. 어지간하면 나처럼 될 거임.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부류가 뭐냐면…"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다.
"타고나기는 찐따로 태어나도, 대충 빡시게 살다보면 잘 살아지기도 해. 보통은 중간에 알아서들 타협하고 적당히 어떻게든 짝 찾아서 대충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고. 니들이 존나 어릴 때는 인서울 기본에 SKY는 몰라도 최소 서성한은 웃으며 갈 줄 알았는데 현실은 지잡대 가는 것처럼, 대부분은 그렇게 타협을 해버린다고. 내 주제에 대충 이만하면 됐지 뭐 하면서. 근데 존나 소수지만 안 그런 새끼들이 있어. 뭐 좆도 없는데 존나게 야심만만한 새끼들"
나는 이때 해창이 형이 준식이 형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타협할 때 안 하고, 끝까지 곤조 있게 뭐 해나가는 새끼들이 있다고. 그게 직업이든 취미든 꿈이든, 대충 하다가 나이 쳐먹고 접는게 아니라, 그냥 설렁설렁하는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죽 뭐 곤조 있게 가는 새끼들. 그러면 뭐가 되긴 되더라. 그게 존나 멋있긴 해. 뭐 본인은 존나 고생했겠지만"
뭔가 암담하고 답 없는 현실의 벽 앞에서, 아주 작디 작은 희망의 빛을 본 기분이었다. 나는 뭘 꾸준히 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리고 그게 가능할지도. 아마 나는 적당히 선에서 타협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나도 30대 초중반에 만나는 적당한 여자랑 대충 결혼해서 살겠지. 현실에 타협해서.
"그럼 형은 뭐에 타협한 거에요?"
윤재의 말. 물론 해창이 형은 굳건한 얼굴로 주먹을 쥐고 손을 위 아래로 흔들 뿐이었고, 모두가 탄식 같은 웃음을 터트릴 때, 현중이 창 밖을 보며 혼자 뭔가 결연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본다. 녀석도 무언가의 결심을 한 것일까.
"뭔 생각 하냐?"
용주 역시 그것을 봤는지 현중에게 물었다. 현중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역시 주먹을 들어 위아래로 흔든다.
어느새 오후도 꽤나 지나가고 어둠이 다가와 이 패스트푸드 가게 안을 아늑한 황금색으로 물들이는 그 순간, 우리와 같은 암담한 청춘들은 그렇게 허무하게 삶의 비전들을 잃어버린다. 그 누군가의 가벼운 말 몇 마디가 아닌, 이미 예감하고 있던 답답한 공감에 의해.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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