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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이 다가온다

2022년 11월 16일 그리니치 표준시 기준 오후 4시 33분. 시스템 세팅 및 안정화 단계를 거쳐, 드디어 본격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게 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

"이게 뭐지?"

지구로 송신된 JWST의 데이터를 확인하던 STScI의 캐슬린 애너 연구원은 타란툴라 성운 이미지에 굵고 긴 검은 선이 그어진 것을 발견했다. 보정과정에서 발생한 데이터 오류라고 생각한 그녀는 데이터 체크를 요청했지만, 이미 그쪽에서도 "확인 중입니다" 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

때마침 울린 배꼽시계로 마침 식사시간이 훨씬 지난 것을 뒤늦게 깨달은 그녀는 잠시 시계를 확인한 후, 식사를 포기하고 커피라도 한잔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JWST의 본격적인 운용이 시작된 이래로 고다드 우주비행센터에서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STScI)로 소속과 위치를 옮긴 그녀는 매번 식사 한번 하기가 참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기가 막혀."

로비층에 있던 카페 Azafran이 영업을 종료한 이래로 왕복 30분이 넘는 거리를 걸어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들 처음에는 'NASA 측에서 우리 보험료를 낮추려고 일부러 운동 시키는 걸거야'라며 자조 어린 농담까지 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다들 짜증을 숨기기 힘들었다. 주차한 곳까지 가는 시간을 감안하면 차량으로 이동하기에도 애매하고, 걷기에는 은근히 멀고, 임시 대안으로 제공된 킥보드나 캠퍼스 내 카트 트레인은 꼭 찾으면 안 보였다. 엄청난 시간낭비였다. 때문에 연구소 측에서는 샌드위치와 커피 케이터링 서비스를 매일 제공했지만, 식사시간 한참 지나 먹는 말라 비틀어진 샌드위치나 다 식은 커피는 이제 정말 신물이 나던 참이었다.

"어쩔 수 없지."

결국 주린 배를 안고 Mudd hall 카페까지 걸어가던 중, 전화가 걸려왔다. 애너는 짜증을 겨우 억누르며 전화를 받았지만, 그 내용은 모든 짜증과 분노를 한방에 영원히 날려버릴 정도의 엄청난 것이었다.

"블랙홀이요?"





블랙홀이 다가온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아무리 서두른다고 해도 이 많은 인원들이 한 자리에 세팅되기까지 족히 반나절은 걸렸을 것이다. 비상 연락망이 구축되어 있는 백악관과 국방성, 국토안보부 관계자 등 국가 주요인사들이라면 모를까, NASA와 ESA 산하 각 기관 책임자들과 관리자는 물론이요 세계 주요 천문연구소의 연구실 귀신들까지 800명이 넘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아야 했으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그럼 대책이 있는 겁니까?"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온라인 화상회의가 일상화 된 현재, 비록 온라인 회의라고는 하나 그들이 모두 모이는데에는 '겨우' 2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물론 그 대가로 충분한 복안이나 검토가 준비되진 않았지만, 그 이상으로 시급한 이슈였다. 그 와중에 대통령은 바로 답을 원했고, 캐슬린 애너 박사는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 어떤 물리적인 방법으로도 블랙홀의 이동 궤도를 인간의 힘으로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약 5초 간의 침묵이 회선을 가득 채운 가운데, 제임스 매킨지 국무장관이 물었다.

"그렇다면 블랙홀이 지구를 덮치는데 걸리는 시간과, 그 이후의 일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캐슬린 애너 박사는 아까 그들에게 시연한 패널에 검은색 마커로 재차 표시를 하며 간단히 설명했다.

"현재의 접근경로로 보건데 블랙홀이 지구의 영향권에 접어드는 것은 약 70일 후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일은…"

캐슬린은 미리 준비해 온 브리핑대로의 말을 하려다가 잠시 말을 흐렸다.




"태양의 600억배 질량을 가진 극대질량 블랙홀이, 엄청난 속도로 이동을 하면서 그 이동경로상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있다?"

처음에는 아무도 못 믿었다. 단순한 데이터 오류로 생각했지만 4분 후, 16분 후 추가로 확보된 정보, 그리고 2시간 뒤 새롭게 관측한 데이터에서도 동일한 결과값이 산출됐다. 게다가 마침 ESA 측에서도 가이아 우주 망원경에 확보된 데이터가 이상하다고 연락이 온 참이었다. 무언가 심상찮게 일이 돌아가고 있다고 느낀 NASA 측에서는 몇 군데의 지상천문대에 확인 요청을 했지만 그 역시 마찬가지의 결론이 나왔다. 관계된 모든 이가 경악했다.

이동하는 블랙홀과 엄청난 질량을 가진 거대한 블랙홀까지는 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이 천체의 문제는 엄청난 크기와 질량의 천체가 '갑자기 생겨났다'라고 할만큼 갑작스럽게 그 존재를 드러낸데다, 믿기지 않게도 그 속도가 광속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그 자체로 모든 천문학자들이 기함할 이야기였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이대로라면 궤도가 정확히 지구를 향합니다."

비상식적인 속도로 해당 천체가 접근 중이었다. 지구에서 약 18만 광년거리에 떨어져 있었음에도 그 블랙홀의 영향력이 지구에 도달하는 것은 계산에 따르면 약 80일 이후. 당연히 블랙홀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사실상 지구의 종말을 암시하는 관측 결과였기에 이 내용은 처음에 NASA 내부에서도 뒤늦게나마 긴급보안사항으로 지정되었지만 이미 ESA를 통해 일부 정보가 유출되기도 했고, 어차피 지구에서도 '타란튤라 성운에 그어진 선'은 명확히 관측되는 것이었기에 약 36시간 후 보안사항을 해제하는 것으로 결정을 보았다.

당연히 뉴스가 보도된 직후 세상은 발칵 뒤집힐 것은 분명했기에, 백악관을 포함한 주요인사가 참여하는 긴급 온라인 회의가 소집되었다. 그리고 NASA 내부에서도 사전 브리핑을 위한 격론이 벌어졌는데, 그 중 일부는 의외의 의견을 내놓았다. 캐슬린 박사도 그 중 하나였다.




캐슬린 박사는 잠시 숨을 고르다가 말을 정리해서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기로 했다.

"…블랙홀은 그 특성상 엄청난 중력으로 자신에게 접근하는 모든 천체를 산산히 원자 그 이하의 단위로 붕괴시킵니다. 지금까지의 우주론에 따르면 지구는 물론 태양계, 그리고 블랙홀의 궤도에 있는 모든 천체는 산산히 부수어지고 우리의 삶은 그대로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블랙홀은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우주론 자체를 초월하는 매우 특이한 천제이며, 엄청난 질량과 크기로 인하여 중심부의 중력이 매우 약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걱정하는 형태의, 지구와 우리가 중력에 의해서 산산히 찢겨지는 일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녀의 말에 잠시 모두가 말이 없어진 가운데, 대통령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조금 쉽게 정리해주지 않겠나?"

NASA의 빈센트 넬슨 국장은 캐슬린 박사의 돌출 발언에 당황했지만, 그녀의 발언을 보장해주기로 했다. '70일 뒤에 우리 모두는 끝장이다'라는 리허설의 준비된 결론과 앞선 발언 반응과 달리, 모두의 눈빛에 한줄기 이채가 감도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캐슬린 박사는 침을 꼴깍 삼키며, 사실 굉장히 급진적일 수도 있는 의견을 제시했다.

"아마 우리 모두는 70일 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한 순간에 원자 이하의 존재로 산산히 분해될 것입니다. 하지만 희박한 확률이지만, 그런 일 없이 무사하게 온전히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이후의 일은 예측조차 불가능합니다."

모두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지만, 정치인들에게는 바로 한 줄기 희망의 존재.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것은 70일 이후의 실낱 같은 가능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장의 질서 유지를 위해서라도 희망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당연히 뉴스가 보도된 이래로 세상은 난리가 났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고작 달이나 조금 크게 볼 수 있을 법한 50달러짜리 싸구려 천체망원경이 며칠 만에 완전히 동이 나고 중고매물조차 800달러가 될 정도로 '종말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욕망'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런만큼 천문학자들의 관심은 더더욱 폭발적이었다. 지구와 우주 궤도상의 거의 모든 '우주를 향한 눈과 귀'는 이제 그 블랙홀을 향했다. 파리에서 개최된 긴급 국제천문학회(IAUGA2022)에서는 해당 블랙홀의 이름을 '오메가'로 부르기로 결정했다.

마젤란 은하에서 우리 은하로, 마치 끝없는 탐욕을 추구하듯 그 엄청난 거리를 '속도의 개념을 초월한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오메가의 존재는 그 자체로 공포였지만, 캐슬린 박사처럼 학회에서 일부 학자들은 소수 의견을 제시했다.

"기존의 모든 우주론과 블랙홀에 대한 이론을 부수고 있는 이 천체는 어쩌면, 희박한 확률이지만 위협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박사님 의견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캐슬린은 곧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되었다. 모두가 세상의 종말을 떠드는 가운데 그나마 희망을 설파하는 몇 안되는 인물이었으니까. 연일 전세계 언론의 인터뷰와 미팅 요청이 쏟아졌고, 그녀의 주장에 반론을 펼치는 주류 학자들 역시도 매우 강도높은 비판을 가해왔다. 오메가 접근에 대한 연구와 NASA, 천문학계 내외부에서의 협조와 비판 등 수많은 골치 아픈 일을 처리해나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약 3주간 그렇게 죽도록 시달린 뒤, 그녀는 NASA 소속으로 워싱턴 D.C의 NASA 헤드쿼터 건물로 불려왔다.

"오, 이게 누구야, '예측 불가능한 여자' 아닌가"
"아, 이제 그만요"

NASA 본부의 제럴드 포츠 부국장은 캐슬린을 보며 짖궂은 농담을 던졌다. 사람들에게 던져진 한줄기 희망 덕분에 치솟던 범죄율은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종말의 공포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던 사람들이 다시 한번 '그 이후의 삶'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의 일간지 SUN은 "창간 이래 가장 우리 신문의 성향과 이름에 걸맞는 뉴스"라며 오메가에 의한 종말론과 한 줄기 희망을 자세히 소개한 이후, 2면에서 '물론 그 이후의 일은 예측조차 불가능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어떻게 구했는지 10년 전의 캐슬린이 입은 비키니 사진을 게재했다. 그 사진은 아주 매력적인 사진이었지만, 현재의 체중이 많이 불어난 캐슬린의 모습과 기묘한 대비가 되어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신문사를 고소할까 했는데, 이제 얼마 안 남은 인생의 마지막 시간들을 재판하는데 쏟기 싫어서"
"희망의 전도사가 정작 본인은 종말론에 무게를 두는구만"
"이런 유명세로 딱 반년만 더 살았다가는 미쳐버리지 않을까 싶네요. 부국장님은요?"
"반반 정도? 오메가의 강착원반이 그렇게 작다면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으니. 그보다…"

부국장은 캐슬린에게 ID카드를 건내고는 25분 뒤에 있을 제트추진연구소와의 미팅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했다.




희망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무리 굉장히 특이한 특질의 극대질량 블랙홀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블랙홀이라는 압도적인 존재가 절망을 내포한 채 접근하는 중임에는 틀림이 없었고 '그 이후의 가능성'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더라도 비전이 없다고 생각한 이들은 '남은 삶에 충실하고 싶다'라는 이유로 온갖 범죄를 저질렀다.

살아있을 때 한번이라도 원하는 것을 가져보고자 하는 충동이 절도와 강도, 폭동을 유발했고, 그것은 물질을 넘어 사람에게까지 향해 온갖 성범죄가 창궐했다. 물론 범죄적 해결이 아닌 정상적인 방법, 즉 '소비와 연애, 결혼'으로 해결하는 이들도 많았다. 또한 그렇게 소유한 것을 남은 50일간이나마 안전하게 챙기기 위해 총기로 무장하고 자경단을 꾸리는 이들도 늘어났다.

다수의 국가에서 치솟던 범죄율은 그렇게 자경단이 조직되거나 계엄령이 내려지는 등의 조치가 취해진 이후로 간신히 안정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또 언론에서도 '오메가 특별방송'으로 물리학 논쟁과 강의가 이어지며 '희박한 가능성'이 단순히 정부의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실제로 물리학적으로는 가능한 일임이 인식되자 조금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희망을 갖는 이들이 생겼다. 그리고 '그래서 설령 가루가 되지 않는다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또 이어졌다.




"이미 시공을 초월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양자얽힘 현상의 미스터리를 웜홀의 존재로 풀어보고자 하는 연구가 존재합니다. 만약 그렇게 웜홀이 실존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걸음, 아니 서너걸음 더 나아간다면 극대질량 블랙홀의 경우 그 특성상 그 존재 자체가 웜홀이거나, 웜홀의 존재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또한 현재 관측되고 있는 오메가의 다양한 특성을 감안할 때, 이러한 예측은 더욱 희망적인 접근이 가능합니다."

NASA의 직원들이라고 해서 모두 이론물리학에 정통한 사람들은 아니다. 유명 축구구단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이 다 축구를 잘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그럼에도 사람들은 의례 'NASA 직원'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하기 마련이고 불안과 초조, 걱정과 호기심에 의해 주변의 아는 NASA 직원이 있기라도 하면 엄청난 양과 깊이의 물리학 질문을 퍼부어댔다.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모른다고 대답했다가는 "정부의 입막음이 두렵소? 나를 못 믿는거요?" 하며 시비를 거는 이들까지 있었기에 내부적으로 그러한 교육이 연일 이어지고 있었다.

"으음…"

또한 하루하루 엄청난 양의 정보와 논문이 쏟아지고 있는 오메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업데이트 하고 논쟁을 거치고 브리핑하여 'NASA발 허튼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조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너무 시간도 촉박하고 검토할 시간도 부족했기에 오히려 '가설투성이의 허튼소리 경연장'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오메가가 일종의 웜홀이라면, 흡수 이후에 블랙홀 너머로 날아갈 수도 있다는 겁니까?"
"네,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요. 블랙홀 정보 역설에 대한 가설로 극대질량 블랙홀이 일종의 웜홀일 수 있…"
"제가 추가로 설명 드리죠. 러시아쪽 논문에서 제시된, 극대질량 블랙홀 내부에 양자쌍생성에 의한 음의 에너지가 가득차있다는 가설을 받아들일 경우 이러한 블랙홀 자체가 일종의 거대한 웜홀로서 기능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보면 그러한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거대한 규모의 절망적인 재앙 앞에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희망적인 일'이라고는 '최대한의 객관성과 과학적 논리를 기반으로 한, 긍정적 해석이 가능한 가능한 가설의 도출' 뿐이었다. 덕분에 오메가 웜홀설, 초끈이론에 의한 차원게이트설 등 과학과 망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무리한 가설들이 무려 NASA의 대회의실에서 오가는 진풍경을 매일 볼 수 있었다.




"5…4…3…2…1…All engines running. Liftoff!"

불과 두 달 사이에 우주로 발사된 위성체가 총 2,632대였다. 목적은 다양했다. 오메가의 접근궤도와 방향에 대해 추가적인 정보를 얻기 위한 관측 위성부터, 역시 천체관측용으로 전용된 군사위성, 종말을 대비하여 1해 분의 1의 확률이라고 하더라도 우주 공간에 인류와 지구 생명체의 흔적을 남겨놓기 위한 기념위성, 우주 공간에서 외부 은하나 성간 우주를 향한 최후의 메세지를 송신하는 특수 위성성 등 다양한 목적으로 발사된 위성체들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하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위성 발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제 블랙홀의 영향력이 지구에 미치기까지 약 5일의 시간이 남았다. '광속보다 빠르게 접근 중인' 오메가는 이제 밤하늘에서 제일 밝게 빛나는 별 중 하나였다. 고배율의 망원경으로 보노라면 그 적청의 빛 한가운데에는 검은 구멍이 뚫린 것처럼 공허의 어둠이 엿보였고, 또 그 와중에도 호킹복사에 의해 거의 회색에 가까운 빛줄기가 뿜어져 나와, 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 떠있는 사악한 눈동자 같은 느낌이었다.

"아아…"

그것은 이미 블랙홀이라는 우주적 천체도, 자연재해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저 사악하게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악마의 눈 그 자체였을 따름이다.

"캐슬린 박사님?"
"네"

캐슬린 역시도 그 압도적인 공포 앞에 모골이 송연했지만,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JWST에서 들어온 최신 데이터를 받아보았다. 그리고 그 데이터 값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오메가의 속도가 확연히 줄었습니다. 2,000C가 넘던 속도가 지금 거의 40C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지금도 속도가 계속 천천히 떨어지는 중입니다. 마치 지구에 다가오기 전 감속이라도 하듯이"

일련의 사태로 최근의 NASA 분위기는 기존의 '차가운 이공계 집단'의 느낌이라기보다는 '과학을 숭배하는 일종의 컬트종교 집단'에 가까운 상태였다. 엄청난 질량을 가진 블랙홀이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압도적인 공포 속에, 한줄기 희망에 기대어 가족과도 연을 끊은 상태로-몇 차례의 극단적인 테러 덕분에 NASA의 모든 연구시설은 외부 민간시설과의 연락 및 이동이 차단되었다- 연구에 매달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가 도출된 것이다.

"오메가의 갑작스러운 감속은, 오메가의 이동 원리에 있어서 국소 이방성 팽창설과 배치됩니다"
"웜홀설이 더 지지를 받겠군요"

많은 NASA의 연구진들은 이미 저 블랙홀의 정체를 단순한 우주 천체로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히 누군가의 어떤 강력한 의지가 담긴 신호였다. 마치 지구를 그대로 퍼담아 어디론가로 옮기고자 하는 그러한 존재.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그들은 더이상 블랙홀이, 아니 오메가가 두렵지 않았다.

"무슨 말들을 하는거야?"

그 결과로 최근 NASA의 공식 브리핑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묘한 불편함을 안기기에 충분할 정도로 모호한 표현과 은유적이며 종교적 색채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아니 NASA 뿐만이 아니었다. '운명의 날'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방송국들은 '정서적 안정'이라는 이유로 정규채널에서 종종 찬송가나 찬불가, 나쉬드를 재생하기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의외로 생각보다 별 일은 없었다. 극에 치달은 초조함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흥분 속의 열띈 침묵'을 유발했다.


그리고 이윽고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캐슬린 박사의 예측은 적중했다. 오메가의 영향력이 충분히 닿을 법한 범위에 도착했음에도 온 세상이 찢겨나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우주의 밤하늘이 서서히 어둠으로 잠식될 따름이었다. 천천히, 그러나 무서운 속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우주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오르트 구름이 사라지고 카이퍼 벨트가 어둠으로 변하며 태양계 저 멀리부터 우리의 우주가 어둠이 되어가고 있었다.

세계 각국의 주요 인사들은 이미 약 3일 전부터 대피소와 다양한 안전지대로 대피한 상태였다. '대피소'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지구는 물론이거니와 태양계 모두가 통째로 블랙홀 속으로 사라질 것이 확실히 되는 와중에도 일부 VIP들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함은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도 여전히 존재했다.

그러나 또 의외로 많은 이들은 그저 높은 산에 오르거나 도시에 그대로 남아 온 하늘을 뒤엎은 거대한 눈동자를 맞이했다. 캐슬린 박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눈동자는 어느새 그저 온전한 어둠이 되어 모두를 칠흑처럼 감쌌다.

"아…"

박사가 느낀 그 순간의 기분과 감정은, 실망과 감동이 복합된 굉장히 특별한 그 무엇이었다.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자기 자신의 생명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방금 전까지 자신이 앉아있던 산 위의 잔디는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고, 텐트 속을 밝히던 램프의 불빛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게임 속 배경 오브젝트들이 완전히 사라진, 어떤 그런 느낌.

자신이라는 존재만 빼놓고는 빛도 소리도 공기도 중력도 사라진 듯한 어떤 완벽한 무(無)의 공간. 캐슬린 박사는 어떤 해방감마저 느꼈다. 그 느낌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수많은 가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 하나 지금의 우주를 설명하진 못했다.


어느 틈엔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고 '나'라는 존재는 시간과 공간에 하나되어 있었다. 블랙홀이 무엇이며 NASA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도 않고 기억 속에서도 빠르게 잊혀져 갔다. 이것은 죽음인지도 모르고 어둠인지도 모르며 소멸인지도 몰랐다. 단지 온 세상에 지극히 가느다란 하나의 점이 되는 듯 했지만 그 희미한 느낌마저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니 점은, 그리고 온 세상은 끝없이 아득하게도 찬란한 밝음을 향해 존재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독하고 무섭다는 말을 넘어 그저 한없이 슬플 정도로 오래된 기억과도 같은 그 무엇이 지금의 상황을 단 두 음절로 설명했다. 물론 그것은 '빅뱅'이었다.

- 끝 - 

금주부터 블로그에 공개되지 않는, 스타일박스의 '미완성 단편(완성 단편 포함)'이 메일링으로 전달됩니다.   

덧글

  • ㅁㄴㅇㄹ 2022/03/28 12:55 # 삭제 답글

    잘 읽었습니다. 상당히 거시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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