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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 감염 [유료구독자 전용] 맛보기

김박스가 눈을 뜬 시간은 오후 3시 20분. 아침 8시가 넘어 잠을 잔 덕분이다. 그러나 두 겹의 커튼으로 가린 방 안은 칠흑과도 같았다.

"으음"

이미 3일이 넘게 뚜껑이 열린 채 방치된 생수통으로 입가심을 한 그는 겨우 일어나 세수를 시작했다. 거울을 봤다. 화장실의 불도 켜지 않았지만 그는 어둠 속에서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염이 어마어마하게 자랐다. 마지막으로 언제 면도를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코와 턱은 물론 뺨에도 털이 부슬부슬하게 일어났다.

"후우"

머리가 핑핑 도는 것이 느껴진다. 술 때문은 아니다. 금주를 한 지 석 달이 넘었다. 머릿 속의 혈류가 어디론가 빨려들어가는 듯한 이 엄청난 느낌은 한달여 전 쯤 초대받아갔던 교황청에서의 사고 때문이다.

"거기만 안 갔어도…"

난데없이 무슨 교황청이냐면, 퇴마작가로 활동한 지난 10년 간의 공적을 인정받아 겸사겸사 정 신부와 함께 공식 초대를 받았던 것이다. 코로나 시국인지라 공항에서 곧바로 바티칸으로 이송되고 2주간 격리를 명 받았지만, 그래도 교황청에 초청받아 왔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 김박스 팔자에 바티칸이 왠말인가. 식사도 괜찮았다. 확실히 거기까진 좋았다. 그러기를 열흘 째 되던 날, 옆 방에 격리되었던 정 신부가 방으로 찾아왔다.

"어? 신부님. 아직 2주 안 되지 않았나요?"
"오늘로서 해금되었네. 더 중요한 일정이 급히 생겨서"
"네?"
"암흑미사에 초정받았네. 자네와 나 모두"
"그 유치한 이름의 미사는 뭡니까"
"내용을 알면 유치하다는 생각은 안 들걸세"




사고는 그 암흑미사 때 일어났다. …뱀파이어 피 한 방울이 눈알에 튀었다. 그 자리에 있던 제이완 추기경이 눈에 즉시 성수를 들이붓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교황청 지하 감옥에서 산 채로 불태워졌을게다.

"으으윽"

다행히 그 자리에서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문제는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발생했다. 특별히 제공된 호텔에서의 14일간 격리 기간이 지나고 자신의 은신처인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현관 문 앞에서 구토를 했다. 은신처 여기저기에 퇴마를 위해 걸어놓은 마늘냄새 탓이었다. 한국인이 문 밖에서 집 안에 걸어놓은 마늘냄새를 맡고 구토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김박스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병의 잠복기가 끝나고 본격적인 감염 증상이 시작됐다는 것을.

"허억"

만약 정말로 뱀파이어 피에 '감염'된 것이라면, 자신의 방 안에 가득한 퇴마도구를 생각해 볼 때 집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바로 끝이었다. 급히 전화로 동생을 불러 근처 모텔에 달방을 잡았다. 두 겹의 커튼도 빛 한 점 들어오지 않게쳤다. 동생은 크게 걱정했지만, 김박스는 그저 "몸이 안 좋아서 그래. 얼른 집에 가" 하고 손을 내저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당장이라도 동생의 목을 비틀고 피를 빨아대고 싶었으니까.

"츄으으으으읍"

며칠 후 동생을 통해 한의사 처방이라며 당일 채취한 사슴피, 녹혈을 말통으로 받아 마셨다. 목이 타죽을 것 같던 고통이 조금은 나아졌다. 김박스는 교황청에서의 그 날을 다시 떠올렸다.




…암흑미사의 주제는 무려 반 헬싱 교수의 장례식이었다. 전설적인 엑소시스트 명인의 마지막을 기리기 위해, 세계 각국의 엑소시스트들이 모인 그 자리에 김박스도 정 신부와 함께 한국 대표로 초대받은 것이다.

"반 헬싱이 실존인물이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했는데요"
"브람 스토커가 드라큘라 소설에 관한 인터뷰에서도 언급했었지. 반 헬싱은 실존인물 모티브라고. 근데 사실은 모티브도 아니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묘사였어. 브람 스토커도 자네처럼 '퇴마작가'였거든"
"그렇군요. 그럼 반 헬싱은 지금 몇 살 나이로 죽은 겁니까"
"아무도 몰라. 가장 유력한 설에 따르면 160살쯤 된다고 하더구만. 기록에 따르면 일단 최소 140살은 넘었대"
"그 정도면 거의 세계최장수 노인 아닙니까. 사인은 뭐랍니까?"
"요즘에 갑자기 죽은 거면 이유가 뭐겠나. 당연히 코로나 바이러스지"
"맙소사"

세계 각국의 엑소시스트들과 수십에 이르는 '비밀 추기경'들의 참석 속에서 교황청 지하의 카타콤에서 조촐하게 치뤄진 반 헬싱 교수의 장례식은 어느새 마지막 절차에 이르고 있었다. 카타콤 동쪽에 있는 화장터로 떠나보내기 직전, 마지막으로 관에 누운 그의 손에 모두들 입술을 마치는 순서였다. 코로나 때문에 죽은 사람의 손에 단체로 돌아가며 키스를 한다는 장례 퍼포먼스가 충격적으로 황당했지만, 흔한 김치맨이 그렇듯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역시나 따라하게 된 김박스였다.

"으음"

한 명 한 명, 순서대로 그의 반지에 입술을 맞추었고 드디어 김박스의 차례였다.

"음, 아리베데르치. …비록 이렇게나마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으아아악!"

김박스가 추모의 뜻으로 반지에 입술을 맞추기 직전, 그 유리반지가 갑자기 퍼석하는 소리와 함께 깨졌다. 다행히도 재빠르게 김박스는 고개를 젖혔지만 그 안에 들어있던 액체 극소량이 김박스의 눈에 튀었다. 눈을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김박스는 제단에서 굴러 떨어져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제이완 추기경이 장례식을 위해 준비했던 성수를 그의 눈에 들이부었다. 즉시 통증이 가라앉았고, 약 10분 후에는 정신을 차렸지만 제이완 추기경은 심상찮은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김박스는 알 수 있었다. 이런 느낌은 정말로 10대 이후로 처음 느끼는 그 무엇이었다. 넘치는 에너지와 또 한 편의 폭발적인 색욕. 그러나 그것은 하복부의 충동과는 다른 그 무엇이었다. 갈증과도 비슷한, 그러나 너무나 허기진 진득한 액체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

"씨발"

그렇다고 정말 피를 빨 수는 없었다. 정 신부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감염을 악화시키는 길이었다. 사슴피를 마신 다음 날,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송곳니가 눈에 띌 정도로 길어졌으니까. 그제서야 부랴부랴 정 신부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아무래도 그 눈에 들어간 '뱀파이어의 피'에 감염이 된 것 같다고.

"교황청 공식 메뉴얼상, 뱀파이어가 된 자는 무조건 화형이 답이네"
"해독제나 치료제는 개발이 안 된 겁니까? 전 세계를 무대로 몇 백년을 쌓아올린 성령과 퇴마의 본진 아닙니까. 무슨 방법이 없대요?"
"전신투석으로 감염을 늦출 수는 있지만, 문제는 그 투석으로 인해 또 다른 환자에게 2차 감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당분간은 참아보게. 어떻게든 내 방법을 찾아보겠네"

정 신부는 일단 피 검사를 위해 나의 피를 소량 뽑은 후, 큰 말통에 뭔 물을 가득 담아와 마시라고 권했다.

"이걸 마시게. 성수에다 뭐 이것저것 탄 물이니까, 치료에 도움이 될지도 몰라"
"성수라…제가 마귀라면 이거 마시면 저 바로 죽는거 아닙니까"
"글쎄. 효과는 나도 장담 못하네"
"후"

뭘 섞었는지 꾸덕꾸덕한 물이 역겨웠지만, 확실히 진득한 목마름이 일시적으로 사라지기는 했다. 그리고는 곧 하염없이 긴 잠에 빠져들었다. 정 신부의 말에 따르면 그대로 이틀간 꼬박 잠을 잤다고 한다. 눈을 뜬 나는 물었다.

"이제는 어쩌죠"
"교황청에 통보하면 즉시 엑소시즘을 하려고 사람을 파견할걸세. 아니면 나에게 그 일을 하라고 지시할 수도 있지.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미 제이완 추기경이 자네의 일거수 일투족을 상세히 보고하라고 나에게 지시를 내렸다네"
"사고였잖아요!"

김박스는 소리쳤지만, 자기가 생각해도 교황청의 대응은 당연했다.

"제발 빨리 치료방법을 찾아주세요"
"알겠네"



감염




반 헬싱 그 미친 놈은 왜 그런 위험한 물건을 죽을 때까지 소지했으며, 또 하필이면 그 물건이 그 찰나에 깨져버린 것인가를 수도 없이 생각한 김박스였지만, 그건 그저 '우연'이라는 말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 아니면 반 헬싱 스스로도 언젠가 찾아올 자신의 마지막에 대비하기 위해 그 피의 힘을 빌리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평생 죽여온 뱀파이어가 되어 '밤의 영생'을 누리고자 했는지도. 결국에는 안 한 듯 하지만.

'잠깐만'

반 헬싱의 나이는 정 신부 말로는 얼추 150살이라고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간은 그렇게 오래 못 산다. 성경 속 인물 몇몇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렇다면 반 헬싱은 흡혈귀 사냥을 하면서 무언가의 방법을 터득한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유리반지 속에 흡혈귀의 피를 보관했던 것 아닐까.

'맞아'

그렇게 생각을 해보면, 김박스 본인에게도 뭔가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즉시 드라큘라 소설 완역본을 주문해서 읽었지만, 그다지 도움되는 정보는 없었다. 즉시 위키 등 인터넷을 찾아보았지만 '드라큘라'에 대한 문헌정보는 결국 서브컬쳐, 판타지의 영역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2021년에 드라큘라 피가 눈에 튀어 흡혈귀가 된 덕분에 퇴마 사제에게 화형당해 죽게 됐다'라는 허무맹랑을 넘어 유치한 3류 소설 같은 일에 김박스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실 웃음이 흘러 나올 지경이었지만, 정말로 답이 없었다.

"무슨 호박 속 모기 피에 공룡 바이러스 걸리는 것도 아니고…참…"

게다가 정 신부가 준 성수를 계속 마시는 것도 조금 위험하다는 느낌을 느꼈다. 당장 어젯 밤, 흰 색의 혈변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무섭다는 생각에 결국 선글래스에 온 몸을 둘둘 말고는 밤의 응급실을 찾았지만, 놀랍게도 병원 현관 앞의 체온측정기에 찍힌 김박스의 체온은 18도였다. 이상체온으로 삑삑 거리는 기계 탓에 그는 병원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캬오오오오"

그날 밤 집으로 오던 길, 결국 김박스는 참지 못하고 길고양이를 잡아서 피를 빨았다. 스스로 인간 이하의 어떤 괴물이 되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흰 색의 혈변이 심해지고 있었다. 기운이 없었다. 어쩌면 정 신부의 조언이… 조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확실히 몸에 짐승의 피가 돌기 시작하자 에너지가 새삼 넘치는 것이 느껴졌다. 생스테이크에서 떨어지는 핏빛의 육즙을 빠는 것과도, 말통에 받아온 사슴피와는 차원이 다른 어떤 '살아있는 피'가 주는 힘. 강렬한 충동이 들었다. 바로 색욕의 힘. 당장이라도 어떤 여자의 목에 이빨을 박고 싶어졌다.

"우우우"

하지만 한국은 19세기의 트랜실바니아가 아니다. 세상 온 천지에 CCTV가 깔린 나라인데, 여자한테 그런 짓을 했다가는 다음 날 체포당할테고, 교도소는 커녕 구치소에 갇혔다가 태양 빛을 진하게 받고 잿가루가 될게 뻔했다.




띠리리리릿- 띠리리리릿-

때마침 걸려온 정 신부의 전화였다.

"자네, 지금 슬슬 한계지?"



(중략 : 본 소설은 스타일박스 유료 메일링 서비스 구독자 전용입니다)

스타일박스 유료 메일링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덧글

  • Cene 2022/03/24 18:29 # 답글

    엄청 예전에 구독서비스 박았는데 안와서 그런가보다 했는데...이제 서비스 시작인가요?
  • stylebox 2022/03/26 20:01 #

    요 근래 개인적인 사정으로 메일 발송이 뜸하긴 했습니다만, 혹시 메일을 아직 한 통도 못 받으셨다면 비밀 글로 메일주소와 입금자명 알려주시면 확인 후 그동안의 메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2022/04/22 09:1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22/05/02 11:53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stylebox 2022/05/03 16:28 #

    jaja/ 이*용님, 현재 발송 및 이메일 열람 기록에 따르면 메일도 발송 받으셨고, 편지도 열람하신 것으로 확인 됩니다. (가장 최근 열람은 그동안의 단편 일람(재발송), 7년 만의 그녀 등)

    다시 한번 확인 부탁 드립니다.
  • ㅁㄴㅇㄹ 2022/03/25 01:03 # 삭제 답글

    퇴마작가 김박스 오랜만인데
    이렇게 갑작스레 죽고 마는 것인가!... 메일 보러 갑니당
  • 와우 2022/04/05 23:12 # 삭제 답글


    중간에 끊기는 거 보고 탄식했다가
    '아 나 구독 했었지' 하고 안심하면서 보러 갑니다
  • 2022/04/29 22:4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tylebox 2022/05/09 11:35 #

    3월 23일자로 발송된 내역이 있습니다만, 열람은 안 하신 듯 합니다. (종종 메일이 스팸메일함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확인 부탁 드려요)

    일단 오늘 자로 다시 메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 2022/05/06 15:32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tylebox 2022/05/09 11:34 #

    3월 23일자로 발송된 내역이 있습니다만, 열람은 안 하신 듯 합니다. (종종 메일이 스팸메일함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확인 부탁 드려요)

    일단 오늘 자로 다시 메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 2022/08/11 20:1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tylebox 2022/08/23 15:14 #

    네 현재까지 작성된 메일은 모두 제공 받으셨습니다. 조만간 신작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2022/10/27 03:3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tylebox 2022/10/27 14:33 #

    네 그동안의 구독 모음집을 보내드렸습니다. 최근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글이 없었습니다. 분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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