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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돈 좀 있어?"

내 나이 서른 여섯.

"얼마나?"

여자친구는 지갑을 꺼내며 물었다. 아니, 지갑으로 될 일이 아니다.

"이천만원"

지갑 속 만원짜리를 꺼내던 여자친구는 지갑을 닫고 물었다.

"이천? 그 돈을 왜?"

몇 가지의 이유를 준비했었는데, 결국에는 코인 이야기를 꺼냈다.

"투자를 조금 했었는데, 잘 안 됐어. 근데 조금만 투자를 더 하면 될 것도 같거든"

물론 씨알이 먹힐 리가 없다. 아니 그보다 여자친구의 표정이 차갑게 식는다.

"오빠 그럼 이제 혹시 돈 하나도 없는거야?"

결혼 이야기를 목구멍 너머로 삼키는 듯한 여친. "이제 우리 결혼해야 되는데?" 라는 다음 질문이 나왔을 타이밍이었지만 나오지 않는다.

"하나도 없는건 아닌데… 지금은 쓸 수 없는 돈이지. 근데 이제 곧 오를테니까, 지금 물타기를 좀 해야…"

머리까지 긁으며 하는 말에 여친은 하… 하며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불과 10분 전까지 날씨 좋은 날 교외 카페에서의 나른한 데이트가, 이별을 고민하는 연인들의 싸늘한 오후로 공기가 바뀌었다. 귀신 같은 타이밍에 해도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손에 든 커피를 말 없이 몇 번 마시던 그녀는 "삼백 만원 정도는 있는데…" 라며 말을 꺼낸다. 나는 그냥 씁쓸하게 웃으며 "아니야, 그냥 괜찮아" 하며 말을 접었다.

"집에 가자"



조금 더 이야기를 하자는 여자친구에게 '머리가 복잡해. 나중에 이야기 더 하자'라는 말로 집 앞에 내려주고는 나 역시 집으로 돌아왔다.

불도 켜지 않은 방, 구부정하게 앉아 내 콧바람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방 안에서 우두커니 몇 시간을 벽만 바라보고 있노라니 여자친구에게 카톡들이 날아왔다. 이런저런 긴 장문의 내용을 담은 카톡과, 마지막의 한 마디.

[ 시간을 조금 갖자 ]

나는 대답 대신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게 벌러덩 뒤로 누웠다. 어두운 방 안의 휴대폰 불빛에 그렇잖아도 눈이 뻐근하던 차였다.

"후우…"

이렇게 하나는 해결됐다. 혹시라도 이 멍청한 기집애가 돈을 어디서 마련해서 진짜 빌려주겠노라고 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아까 삼백이라도 빌려주겠노라는 말에 식겁을 했네.

착한 년.

콧바람이 떨린다. 잘 가. 미안해. 빙글빙글 도는 머리 속에서, 사흘 전 엄마의 전화가 떠오른다.

"니 애비가 또 그 코인인지 뭔지 지랄을 해가지고, 집에 사채빚 갚으라고 독촉장이 왔다. 어쩌냐 이거. 구천만원이 넘어…"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이것만큼은 나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 또 아버지의 '그 병'이 시작된 거다. 보증, 사업, 도박, 주식… 이제는 뒤늦은 코인으로 전 재산 다 까먹기. 평생 낫지 않는 불치병.

모르겠다. 어두운 방 안에서 눈을 감고 어디론가의 우주 속으로 빠져든다. 다행히 내일은 일요일이다. 나는 긴 잠에 빠져들기로 한다.

덧글

  • ㅁㄴㅇㄹ 2022/04/08 09:24 # 삭제 답글

    아 줠라 슬프넹...
  • ㅇㅇ 2022/06/13 08:22 # 삭제 답글

    일부러 보내주려고 한거구나...착하네...
  • verano 2022/08/12 00:01 # 삭제 답글

    박스님, 이번에 수도권에 비가 많이 왔는데 피해 없으셨나 걱정입니다
    휴식기 이신듯 한데 푹 쉬시고 글빨 올라오실때 또 글 싸주시길 응원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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