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추운 날이다. 얼른 집에 가서 보일러 올리고 그냥 눕고 싶지만, 생각해보니 집에 뭐 딱히 먹을게 없다.
"후우"
언제나처럼 역 앞의 순대국집으로 향한다. 가게 안에 들어서자마자 뿌옇게 안경에 김이 서린다. 안경을 벗고 닦으며 "순대국 하나요" 주문하며 빈 자리에 앉는다.
"보통 하나?"
"네"
"여기 3번에 보통 하나!"
인상 좋은… 아니 솔직히 뭐 썩 그리 좋지는 않은 여자 사장님이, 내 테이블에 삶은 수저들이 잔뜩 담긴 수저통을 내려놓으며 주문을 받았다. 곧이어 물통과 김치, 깍두기 반찬이 나온다. 시큼한 냄새. 이 집 김치들은 내 취향은 아니다. 난 손도 대지 않는다. 물을 꼴꼴 따라 마시는데, 추운 날씨에 한 모금만 겨우 넘긴다.
가게는 두어 테이블을 빼고 비어있다. 오늘 유난히 사람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식때가 살짝 지나서 그런 것인지. TV에는 YTN 뉴스가 소리없이 흘러나오며 오늘도 무언가의 여야 갈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휴대폰을 꺼내든다.
"흐음"
뭐 재미나는 것도 없다. 그냥 그렇다. 입맛을 다시며 인터넷이나 하노라니 곧 국밥이 나온다. 후우, 한 수저 떠먹으니 뜨끈하니 좋다. 휘휘 저으며 뜨거운 김을 빼고 순대부터 하나 베어 문다. 맛있다. 뻔히 아는 그 맛인데 역시나 맛있다. 그래도 서서히 입김 불어가며 먹는다. 후룹, 허허 후룹. 갑자기 뜬금없이 소주 한 잔도 땡기지만 배나 채우러 온 식당에서 순대국밥 팔천원에 소주 오천원까지 해서 쩜삼만원 채울 생각은 안 든다. 주문하려던 나를 겨우 말린다.
"허, 맛있네"
굳이 쓸데없는 혼잣말까지 해가며 먹는다. 정신없이 먹노라니 피곤한 가게의 형광등 불빛에 갑작스러운 노곤함이 쏟아진다. 집에 가면 오늘은 일찍 자야지. 그런데 집까지 가는 길이 너무 싫다.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리며 마른 세수를 한다. 가벼운 한숨과 함께 수저를 다시 든다. 조금은 식어 딱 먹기 좋다. 애초에 이 집은 너무 뜨겁지 않게 내오는 게 마음에 든다.
순대국에 밥을 말아 먹으며 유튜브를 소리도 없이 본다. 에어팟은 배터리 충전하는게 귀찮아서 그냥 안 들고 다닌다. 순대국에 밥까지 말아먹었는데 어째 속이 조금 부족한 것도 같다. 한 그릇 더 말아먹을까 하다가 두둑한 뱃살 생각에 일단은 참아본다.
집에 가도 딱히 할 일은 없다. 아마 조금 뒹굴거리다가 휴대폰이나 하다가 잠이 들겠지. 집에 갈 때 귤이나 한 봉지 사가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삶이 조금은 덧없다. 여름이랑 안 헤어졌더라면 내 삶이 뭐가 좀 달라졌을까. 근 1년째 이 지랄이다. 오늘도 공허한 생각 속에 뚝배기를 긁는다.
"계산이요."
"네 팔천원입니다. 영수증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온다. 뱃 속에 뜨끈한 것을 채우니 추위가 덜하다. 집까지의 15분, 또 멍하니 걷는다. 추위도 모른다. 시간도 모른다. 오늘은 여섯시 반 칼퇴근을 하고 나왔는데 어째 일곱시 반이 넘었다. 입김을 의식하자 다시 춥다. 13번 마을버스가 지나간다. 저걸 타면 여름이네 집에 갈 수 있다.
'어?'
하지만 금새 정신 차리고 그저 발걸음만 옮긴다. 미친 짓을 할 이유가 없다.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하고 무슨 기대를 하는건데. 병신새끼. 코웃음이 다 난다. 어느새 집 앞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도 쌀쌀하다. 뭐라도 먹고 들어오길 잘했다. 서둘러 보일러를 켜고 옷을 벗으며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그래, 다시 만나봐야 뭐 없지. 내일은 금요일이다. 일 끝나면 빨리 집에 와서 간만에 넷플릭스라도 좀 봐야겠다. 국밥 같은 내 팔자여.
"후우"
언제나처럼 역 앞의 순대국집으로 향한다. 가게 안에 들어서자마자 뿌옇게 안경에 김이 서린다. 안경을 벗고 닦으며 "순대국 하나요" 주문하며 빈 자리에 앉는다.
"보통 하나?"
"네"
"여기 3번에 보통 하나!"
인상 좋은… 아니 솔직히 뭐 썩 그리 좋지는 않은 여자 사장님이, 내 테이블에 삶은 수저들이 잔뜩 담긴 수저통을 내려놓으며 주문을 받았다. 곧이어 물통과 김치, 깍두기 반찬이 나온다. 시큼한 냄새. 이 집 김치들은 내 취향은 아니다. 난 손도 대지 않는다. 물을 꼴꼴 따라 마시는데, 추운 날씨에 한 모금만 겨우 넘긴다.
가게는 두어 테이블을 빼고 비어있다. 오늘 유난히 사람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식때가 살짝 지나서 그런 것인지. TV에는 YTN 뉴스가 소리없이 흘러나오며 오늘도 무언가의 여야 갈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휴대폰을 꺼내든다.
"흐음"
뭐 재미나는 것도 없다. 그냥 그렇다. 입맛을 다시며 인터넷이나 하노라니 곧 국밥이 나온다. 후우, 한 수저 떠먹으니 뜨끈하니 좋다. 휘휘 저으며 뜨거운 김을 빼고 순대부터 하나 베어 문다. 맛있다. 뻔히 아는 그 맛인데 역시나 맛있다. 그래도 서서히 입김 불어가며 먹는다. 후룹, 허허 후룹. 갑자기 뜬금없이 소주 한 잔도 땡기지만 배나 채우러 온 식당에서 순대국밥 팔천원에 소주 오천원까지 해서 쩜삼만원 채울 생각은 안 든다. 주문하려던 나를 겨우 말린다.
"허, 맛있네"
굳이 쓸데없는 혼잣말까지 해가며 먹는다. 정신없이 먹노라니 피곤한 가게의 형광등 불빛에 갑작스러운 노곤함이 쏟아진다. 집에 가면 오늘은 일찍 자야지. 그런데 집까지 가는 길이 너무 싫다.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리며 마른 세수를 한다. 가벼운 한숨과 함께 수저를 다시 든다. 조금은 식어 딱 먹기 좋다. 애초에 이 집은 너무 뜨겁지 않게 내오는 게 마음에 든다.
순대국에 밥을 말아 먹으며 유튜브를 소리도 없이 본다. 에어팟은 배터리 충전하는게 귀찮아서 그냥 안 들고 다닌다. 순대국에 밥까지 말아먹었는데 어째 속이 조금 부족한 것도 같다. 한 그릇 더 말아먹을까 하다가 두둑한 뱃살 생각에 일단은 참아본다.
집에 가도 딱히 할 일은 없다. 아마 조금 뒹굴거리다가 휴대폰이나 하다가 잠이 들겠지. 집에 갈 때 귤이나 한 봉지 사가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삶이 조금은 덧없다. 여름이랑 안 헤어졌더라면 내 삶이 뭐가 좀 달라졌을까. 근 1년째 이 지랄이다. 오늘도 공허한 생각 속에 뚝배기를 긁는다.
"계산이요."
"네 팔천원입니다. 영수증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온다. 뱃 속에 뜨끈한 것을 채우니 추위가 덜하다. 집까지의 15분, 또 멍하니 걷는다. 추위도 모른다. 시간도 모른다. 오늘은 여섯시 반 칼퇴근을 하고 나왔는데 어째 일곱시 반이 넘었다. 입김을 의식하자 다시 춥다. 13번 마을버스가 지나간다. 저걸 타면 여름이네 집에 갈 수 있다.
'어?'
하지만 금새 정신 차리고 그저 발걸음만 옮긴다. 미친 짓을 할 이유가 없다.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하고 무슨 기대를 하는건데. 병신새끼. 코웃음이 다 난다. 어느새 집 앞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도 쌀쌀하다. 뭐라도 먹고 들어오길 잘했다. 서둘러 보일러를 켜고 옷을 벗으며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그래, 다시 만나봐야 뭐 없지. 내일은 금요일이다. 일 끝나면 빨리 집에 와서 간만에 넷플릭스라도 좀 봐야겠다. 국밥 같은 내 팔자여.
덧글